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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無消息(무소식)이 喜消息(희소식)인가?
작성자 zenilvana

내 이메일을 원하지 않으면 주저없이 알려달라고 어제 "부탁 드렸다"만 아직 그럴 의사가 없다는 건지......
아직 무소식이니 이걸 희소식으로 봐야 할까, 주저가 되는구먼.
원래 말들이 없으신 분들이니까, 이번의 내 진정한(?) 부탁을 가타부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보내주어서 기분 내키면 읽어보고 잘됐던 말던 하찮게 여기고 지나치면 그만인 것을...동감하던 말던.
아니꼬와질 경우가 많을 것으로 안다.
그래서 흰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용감하게 아예 거절을 부탁하기도 하지.
자~ 이제, 내 이메일 상대가 한명 줄었으니 그만큼 부담이 줄어들어서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보시는강?

실제로 그렇지가 않으니.
이미 이곳의 일간신문 두곳에 써올린 것을 그냥 옮기는 정도의 수고가 있을 뿐이다.
자네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도리어 불편하다.

왜냐 하면, 이곳 독자들을 상대하는 장소들에서는 誤打(오타)나 기타 수정할 일이 생기면 바로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자네들에게 보내주는 것은 마치 쏜 화살과 같아서 시위를 떠난 것을 쫒아가서 잡을 수가 없지.
정정판이란 것으로 맘에 들게 고친 것을 뒤에 보내주는 것 또 한번 받아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를.
도대체 어째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고?

여러번 말했지만 나는 멍하고 살기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맘을 쓰면 하루가 빨리 가고, 또한 그넘의 치매를 방지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남의 글이나 뒤적이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고 나는 본다.
"溫故而知新(고이지신), 可以僞師矣( 가이위사의), 즉 배운 지식을 잘 익히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면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孔子가 말한 모양인데, 나는 한 발작 더 나아가서 자네들과의 옛 우정을 이와같이 하고자 함이 있다.
우리가 수역만리로 떨어져 사는 고령의 나이에 한 때 코흘리개로 만난 옛날의 자네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일부러 찾아다니며 술잔을 맞대고 서로의 형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얼마나 조컸냐?
그게 않되지.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척할 처지도 아닌 바에야 소식이라도 주고 받고 하자는 거지비.
그런데 그것 마저 거부하는 소위 친구라는 사람이 있으니, ㅉㅉㅉ
요한복음 13장 3-11절에 제자의 발을 씻기신 여수님의 얘기가 있다.
베드로가 놀래서 어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싰는 가를 물었다.

네가 내 하는 일을 거절하면 "너와 나는 더 이상 관계할 수가 없다"고.
인간관계는 대화로써 연결된다구.
지존의 하나님 아들이 미천한 인간의 발을 싰기는 것이 곧 사랑의 표시라 하더군.
웃기는 이바구다.

거절함으로써 자존심을 살리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이랄지,
질투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원래 質(질)이 떨어지는 인간은 이같은 시기심에 휩싸이기 일수이고,
자신이 만만한 사람은 남의 장점을 인정해주지를.

왜냐?
자기는 다른 방면에서 그 보다 뛰어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때의 인연을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친구의 情(정).....
우물이 있어도 물이 마르면 거기를 다시 찾지 않지를.


禪涅槃

2018-08-14 08: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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