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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 전 일이다.
60년 대 후반 젊었을 때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우연히 자동차 일로 고인과 알게 되었다.
그 후 고인은 그와 가까운 분이 또 같은 일이 생겨 나에게 그 분을 보냈기에 간단한 일이었지만 도와 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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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영화배우 고 박xx 씨 였다. 그 후 우린 별로 연락 없이 지내다가 70년 초반에 그 분이 청계천 3가에 있는 XXX 이란 대형 바(맥주 집)를 운영한다는 얘길 듣고 찾아 갔더니 마침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날 보고는 그렇게 반가워 할 수 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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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집을 심심하면 들락거렸는데 하루는 나보고 뭔가 일이 생겨 보건소에서 잘 못 하면 영업정지가 내릴 것 같다고 해서 사연을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아 듣기만 하고 왔다.
다음날 보건소에 알아 봤더니 몇 가지만 고쳐주면 간단히 해결 될 일이라 내가 책임 질 터니 그렇게 해달고 하고는 다음 날 최 선생을 찾아가 그 말을 하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고 해서 일이 잘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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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후 며 칠이 지났을 때 난데없이 최 선생이 날 사무실로 찾아와서 그 때 고마웠다면서 돈 다발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나에게 주기에 적극 사양을 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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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후 퇴근을 하고 가게에 가서 만났는데 낮에 그 돈을 받기가 뭐해서 저녁에 그 돈을 받으러 온 것으로 착각을 했는지 얼른 직원을 시켜 낮에 본 그 보따리를 들고 와서 나에게 건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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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온 게 아니라고 하면서 꼭 그렇게 날 주고 싶으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고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술을 좋아하니 올 때 마다 나의 계산서에 포함 되는 영업세를 빼고 계산을 해 줄 수 있는 가고 했더니 그거야 아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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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최 선생은 날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우린 친구 같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명 했던 분들을 몇 분 가까이 지내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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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몇 살이 위라고 하면서 내가 존댓말을 쓰면 그도 꼭 존댓말로 날 대하면서 친구같이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영업세에 부과 세에 이런 것이 많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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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다가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난 후 그가 하는 충무로 한 가게에 갔더니 그가 손님들 앞에서 하루에 두 번씩 노래를 해 주곤 하면서 손님들과 얘길 아주 진지하게 하는 걸 보고 내가 가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고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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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날 바꾸어 보고 이겨낼 수 있으면 한국에서 살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 가야지 하곤 이를 악물고 공직에 있던 모든 몸에 벤 일들을 떨어버리려고 애를 쓰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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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우연히 충무로 길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나를 끌고 설렁탕 집에 가서는 둘이서 낮에 소주 한잔씩에 설렁탕을 먹고 나오는데 나의 주머니에 용돈이 귀하지 않느냐면서 돈을 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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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이 지났는데 90년 대 초에 San Pedro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그 때 최 선생이 거기에 온다는 얘길 듣고 가서 만나고는 우린 연락이 없이 살다가 오늘 이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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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누구와도 미소를 머금고 얘길 나누던
고 최 희 준 선생, 잘 가시오.
편히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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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의 가게에 가면 꼭 내가 선생께 신청하던 노래
“하숙생” 여기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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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준 하숙생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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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이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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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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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생!
잘 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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