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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정희와 싸우며 ‘행복했던’ 사람들 - (1)서울대 상대 학생 김병곤
작성자 justin

박정희와 싸우며 ‘행복했던’ 사람들 - 서울대 상대 학생 김병곤

1974년 여름 어느 날, 서울 삼각지의 국방부에 설치된 비상군법회의 법정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군 검찰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구형을 시작했다. “피고인 이철, 동 유인태, 동 여정남, 동 정문화, 동 황인성, 동 나병식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그해 4월 24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가 발표한 민청학련 사건 중간조사 결과를 보면 그들은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민혁명당 조직과 재일 조총련의 조종을 받는 일본 공산당원 및 국내 좌파 혁신계 등의 조종을 받아 국가변란을 획책’한 ‘대역죄인들’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상을 조사한 결과,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수사기관이 그들을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해서 그 사건을 꾸며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법원의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74년 정초에 대통령 박정희가 공포한 긴급조치는 청년학생과 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은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검찰의 구형량은 대부분의 경우 선고형량과 일치하는 ‘정찰제’였다. 그래서 사형을 구형받는 순간 피고인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앞에 말한 재판에서 검찰관은 서울대 상대 학생 김병곤에게도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22세이던 그는 웃음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이렇게 사형이라는 영광스런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김병곤 추모문집, <영광입니다>, 180~181쪽)

그 무렵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모든 대중매체들은 군법회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전혀 보도하지 못했다. 그런 일조차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병곤의 ‘영광입니다’는 재판을 방청한 구속자 가족들의 입을 통해 개신교나 천주교의 ‘인권기도회’에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민주인사들은 박정희 독재와 싸우다 ‘저승사자’의 코앞에까지 간 청년이 죽음을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4년 7월 9일 군법회의 제1심판부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병곤은 상급심에서 무기로 감형된 뒤 1975년 2월 12일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는 그 이후 긴급조치 시기는 물론이고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때에도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에 전념하면서 다섯 번이나 투옥되었다. 그는 고문과 옥살이의 후유증이 분명한 난치병으로 1990년 12월 6일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을 앞둔 날, 병상에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가족과 선배, 동료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김병곤의 죽음은 시대의 불행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자리잡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영광입니다.” 74년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의 조직사건 민청학련 사건 주모자로 검거된 김병곤이 사형을 선고받은 군사법정에서 일갈했다는 최후진술.
그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어찌 기억 못 하겠는가.

김지하, 유인태, 이철...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사형선고 앞에서는 사색이 되었을 텐데 겨우 22살 밖에 안 된 청년이 어떻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선, 민중을 위해선, 군부독재 종식을 위해선 죽어도 좋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독립군도 아닌데 말이다.

2018-10-11 08:55:1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3   deborah9 [ 2018-10-12 00:42:48 ] 

I am living witness.that without his giving the hand of help, I never could become who I am today. He changed my life and many more who ever passed his screen and test. No man is perfect. I will never forget what influence he made to this woman. Let us forgive what he did not do right, because there are much more good things to his country and his people. He is my hero and the one of the best leader in 5000 years history. It is easy to say than done.

2   bibliatell [ 2018-10-11 11:55:27 ] 

기가막힌 시리즈입니다. 고대하겠습니다. 여기 열당 필객 중 어느 셜대 상대 출신과는 하늘과 땅차이군요. 풒.

1   justin [ 2018-10-11 08:58:09 ] 

독재자와 싸우며 ‘행복했던’ 사람들의 시리즈를
연재로 포스팅 할까 합니다.

다음편을 곧 준비 하겠습니다.

기대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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