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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정희와 싸우며 ‘행복했던’ 사람들 - (2) 목사 문 익환
작성자 justin

문익환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다.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이며 참여시인이었다.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라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한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서학자로도 활동하였다.

문익환목사는 친구이자 사회운동가인 장준하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70년대~1980년대 국민들을 군대의 힘으로 억압하는
박 정희 군부독재정권에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비판(1978년)하는 등
여러차례 저항하여 수차례 투옥되었다.

58세의 ‘늦깎이’로 1976년에 처음 ‘빵잽이(죄수)’가 된 문익환 목사는 긴급조치 시기에 두 번(그 뒤 네 번 더 수감됨) 옥살이를 했다. 그는 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비롯해서 여러 종교인들이 함께 발표한 ‘3·1민주구국선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당했다. 그는 감방 벽에 ‘신랑이 신부의 방을 찾듯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 두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문 목사는 1977년 4월 16일 아내 박용길 장로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나를 믿으시오. 나는 건강하게, 즐겁게, 보람차게, 너무 너무 뜻있게 살고 있다는 것을! 여기 교도관들도 60 먹은 사람의 몸이 그렇게 유연하고 건강하다는 데 놀라고 있죠. 햇빛을 받으며 30분 동안 뛰는 나의 몸은 30대의 젊은 몸이라고들 한다오.”(문익환 목사 옥중서한집 <꿈이 오는 새벽녘>, 10쪽)

문익환 목사는 1994년 1월 18일 저녁, 급작스런 심장질환으로 작고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기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억압적인 정치체제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

(문익환 지음, ‘꿈을 비는 마음’에서)을 꿈꾸다가
그를 따르던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기고 떠났지만,
해마다 그의 기일(忌日)이 오면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축제’ 같은 추모식을 열곤 한다.

여생의 절반은 감옥에서, 나머지 절반은 투쟁현장에서 보내
그 실천하는 삶을 감히 이 짧은 포스트로 할수 없다.
사람들은 통일목사, 통일스승, 노동자 농민 노점상 철거민들,
억눌리고 빼앗기는 사람들의 피어린 현장을 찾아가
껴안고 어루만지던 모습을 기억하면
마음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자리잡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2018-10-13 09:30:56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bibliatell [ 2018-10-15 12:06:33 ] 

새대를 한참 앞서 갔던 영웅들이다. 열당에서 딱딱 소리들이나 내는 틀탁들은 알 수도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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