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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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 정희 시리즈(3)
작성자 justin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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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의 엽총난사 사건을 보아도 박정희의 주색탐닉이 육여사가 죽은 후 홀아비 고독 때문에 생긴 일만은 아니었다. 육여사가 살아있을 때도 주색으로 충돌이 잦았다. 다만 홀아비가 된 후 그의 사생활이 더욱 절제없이 무너진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그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됐다. 10·26사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박정희의 사생활 문란과 판단력 마비가 직접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박선호의 증언 내용이다.

변호사의 술자리 여자문제에 대한 신문에 박선호는 고개를 떨구었다. 목소리도 기어 들어가듯 작아졌다.

박선호: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변호사: (한참 묵묵히 있다가) 피고인은 1978년 8월11일에 의전과장이 되어서 1979년 10월27일 면직될 때까지 하루도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네.

변호사: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말에 추석이나 정초 휴일까지 포함되지요?

박선호: 그렇습니다.

변호사: 휴일을 포함해서 하루도 결근을 하지 않고 계속 출근했다는 말이지요?

박선호: 네. 부장님의 언제 어떤 지시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제가 매일 나갔습니다.

변호사: 피고인은 어제 말한 소행사나 대행사, 이게 하도 빈도가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라고….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일년 중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고위층이 사생활을 즐기는 데 그의 모든 시간을 바쳐야 했고 그것이 공무였다. 의전비서나 의전과장이란 본래 그 조직과 외부간 접촉에서 절차와 일정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고위층일수록 만나고 싶어하는 외부인사는 많고 시간이 부족한 법이다. 여기서 의전비서에게 세도를 부릴 권한이 생기게 된다.

즉 고위층과 만나는 시간을 잡아주는 역할이 상당한 영향력을 파생하는 것이다. 또 의전비서는 대부분 고위층의 심복이다. 자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비서가 나중에 수틀려서 자신의 행적을 폭로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평생동지를 의전비서로 삼는 것이 통례다. 특히 독재자의 경우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하는 역시 경호실장과 의전수석비서관이었다. 개인생활과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는 부하인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의전과장은 부장이 가장 신임하는 오른팔이 맡게 돼 있었다. 대통령과 중정부장의 내밀한 사생활을 관리하는 직책이 되면서부터였다. 국가기밀과 정보관리를 내세워 일반 국민의 눈에 완전히 가려져 있는 중앙정보부에 대통령을 위시한 최고권력자들의 환락생활을 뒷바라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 실무 책임자가 의전과장이었다.

박선호가 이따금 함께 신세타령을 했다는 남효주 사무관은 궁정동 안가 비밀요정의 관리자였다. 대통령 전용 관립요정을 두고 그 관리자에게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직급인 사무관을 부여한 것이다. 남효주 얘기가 나오자 군검찰관은 당황했다. 대통령 사생활의 가장 깊숙한 비밀얘기가 노출될 위기였다. 검찰관은 급히 제동을 걸었다.

검찰관: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본건 변호인은 본건 공소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무사: 사건과 관련 있는 건만 신문해 주십시오.

변호사: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재판부에서 대답하지 않게 해도 좋습니다만….

법무사: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 진술 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변호사: 어떻습니까.

박선호: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변호사: 소행사, 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하고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 받았다는데….

박선호: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변호사: 있죠.

박선호: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보통군법회의 재판 때만 해도 박선호는 박정희의 주색문제에 대해 공개진술을 꺼렸다. 그것은 고인의 명예를 손상하는 일이지만 자신도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문제를 토로하기 시작하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고 난 후 항소심인 고등군법회의 재판에 들어가서다.

계속 ~~~~~~

2018-11-07 13:23:3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bibliatell [ 2018-11-07 15:13:56 ] 

흥미 짱이다. 굵은 대지만 알다가 디테일이 나오니 요즘 젊은 아이들 표현대로 진짜 쩐다 쩔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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