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변호사 신문에 앞서 진행된 검찰관 사실신문에서는 연회장의 여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끊어지곤 했다. 박선호 피고인이 대통령의 주연담당이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처음부터 군 검찰관은 사실신문에서 피고의 진술을 통제하고 나섰다. 박선호가 10·26 당일의 행적에 대해 진술하면서 「대행사」 얘기를 꺼내자 검찰관은 재빨리 『네 알겠어요』라며 말을 더 이상 못하도록 끊었다. 또 행사준비차 플라자 호텔에 갔었다면서 다음 말을 이으려 하자 검찰관은 급히 『네 알겠습니다』고 말을 막았다.
이는 군검찰관이 피고인을 신문하는데 있어 사건발생의 전후관계를 따져 밝히는 것보다 각하의 사생활 보호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얘기가 된다. 또 그런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검찰관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 군사재판은 법정의 옆방에 보안사령부 파견관이 대기하면서 수시로 지시메모를 전달한 이른바 「쪽지 재판」이었다.
이 재판에서 김재규는 주로 고도의 정치문제를 진술한데 비해 박선호와 박흥주 피고 등 그의 부하들은 핵심권력자들의 사생활과 권력투쟁상을 묘사했다. 당시까지 그런 비화는 국가기밀의 너울을 쓰고 바깥에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이 알건 모르건 그날의 궁정동 행사는 결국 「절대권력은 절대로 타락한다」는 금언을 실증하는 최후의 자리였다.
검찰관: 지난 10월26일 대통령 각하 주재 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언제 누구로부터 받았습니까?
박선호: 26일 오후 4시 25분경에 청와대 경호처장으로부터 『오늘은 대행사가 있다. 장소는 나동이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연락을 받고 바로 나동을 관리하는 남효주 사무관에게 나동에서 대행사가 있다,… 대행사가 있다고 그러면….
검찰관: 네, 알겠어요. 김재규 피고인이 남산분청에서 본관 집무실에 몇 시에 도착했습니까?
박선호: 4시 30분경으로 생각됩니다.
검찰관: 피고인이 식당관리인이 남효주에게 만찬준비를 시킨 후에 시내에 손님을 만나러 간 사실이 있죠?
박선호: 네.
검찰관: 몇 시에 나갔다가 몇 시에 돌아 왔나요?
박선호: 부장님이 4시 30분경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행사관계를 보고드리고 제가 차를 가지고 바로 플라자 호텔을….
검찰관: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18시 25분경 위 식당으로 되돌아 왔습니까?
박선호: 네.
검찰관: 피고가 만찬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만찬은 시작됐죠?
박선호: 네, 제가 오니까 이미 만찬이 시작돼 있었습니다.
박선호의 이 증언으로 10·26사건 당일 밤 박정희의 양옆에 앉았던 두 여인은 법정 증언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두 여인이 법정에 출두하는 날 보안사가 주도하는 합동수사본부는 이들의 신원이 알려지지 않도록 크게 신경을 썼다. 이들이 역사의 현장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사건 뒤의 여자」로 비쳐 세간의 눈길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계엄이었기 때문에 언론은 이 여인들에 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으나 시중엔 여러 소문들이 나돌았다. 두 여인의 프라이버시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나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그들의 사생활 보호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 여인은 유명가수로 대중문화의 스타여서 일반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박정희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여론이 부상할 수도 있어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그래서 합수부는 언론보도에서 두 여인의 사진을 뒷모습만 게재하도록 제한했으며 이름도 가명을 쓰게 했다. 시중에는 이미 손금자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가수가 누군지 알리는 정확한 「유비통신」이 퍼져 있었다. 유수대학의 연극영화과 재학생이며 모델노릇도 한다는 정혜선양의 신원도 언론보도만 막는다 해서 감추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이미 알려진 대로 가수 손금자는 심수봉씨, 정혜선은 신재순양이었다 ).
12월17일 오후 4시 15분경, 두 여인은 감색 제미니 승용차를 타고 보통군법회의 8회공판이 열린 군사법정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별관에 별도로 마련한 소법정에서 수시간에 걸쳐 따로 증인신문에 답변했다. 두 여인을 신문하기 위한 별도법정에는 재판부와 검찰관, 변호인 그리고 보도진은 4명, 방청인은 기관원으로 제한됐다.
정혜선(H대 연극영화과3년. 패션모델): 처음 총소리가 난 후 화장실로 피신했는데 조금 있다가 또 총소리가 났습니다.
검찰관: 그 때 대통령 각하는 어떻게 하고 계셨습니까?
정: 쓰러져 있었는데 식탁 옆으로 몸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검찰관: 총소리가 난 후 불이 나갔나요?
정: 불이 꺼진 뒤 손양과 둘이서 각하를 부축했습니다. 그 때 차지철 경호실장은 『경호원, 경호원』 하고 소리치며 화장실에서 나와 문갑을 잡고 있었습니다.
검찰관: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정: 식탁에 엎드린 각하를 일으켜 부축했는데 그 때 김재규 부장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각하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 나도 이제 죽었구나 하고 겁이 나서 실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조금 조용해지는 것 같아 나와 보니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각하를 업고 나갔습니다.
검찰관: 차실장을 본 일이 있습니까?
정: 방에서 빠져나가려는데 차실장이 문가에 쓰러진 채 살아 있어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부축하면서 일어나라고 했더니 『나는 못 일어날 것 같애』라고 하기에 그냥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때 옆 사람이 안내해 줘 어느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데 신음소리도 났고 조금 후 총소리가 계속해서 일곱 발 정도 났습니다. 그 방에 전화가 몇 번 왔는데 무조건 모른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