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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회] 박근혜가 ‘박정희 향수’ 걷어내는 역할
작성자 coyotebush

박정희가 암살당한 후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 세간에서는 朴正熙의 성명을 파자(破字)하여, “점괘(卜)에 따르면 18년(十八)간 집권했지만, 네 번에서 그쳐야(止) 했는데, 한 차례 더(一) 하려다가 자기(己) 부하(臣)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는 풀이가 나돌았다.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사람들의 공감은 사는 데는 모자라지 않은 숫자풀이였다.

2016년 겨울 전국에서 촛불항쟁이 계속되고 박근혜가 국회의 탄핵을 받아 퇴진에 몰리게 되자 이번에도 세간에서는 그럴듯한 숫자풀이가 나돌았다. 국회의 탄핵과정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1명이 투표에 불참하고, 234명이 탄핵찬성, 56명이 반대, 7명이 무효,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탄핵인용하면, 9는 박근혜 구속, 0은 박근혜 영창(123456910)이란 기발한 풀이였다.

또 박정희가 18년간 집권하다가 암살되고, 박근혜는 18년간 청와대 생활, 부친의 암살 후 18년간 칩거, 정계투신 18년 만에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숫자 풀이도 따랐다.

박근혜는 5‧16쿠데타 후 51년 6개월 만에 51.6%를 득표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막힌 우연성을 보였다. 세상사는 가끔 우연의 우연성을 보여준다. 역사학자 EㆍHㆍ카는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라 하였다.

2016년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3만 명이 모여 촛불을 들면서 시작된 촛불혁명은 연말 ‧ 연초까지 계속되면서 연인원 1,000만 명이 훨씬 넘었다. 집회당 평균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로써, 이것은 세계혁명사에 첫 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비폭력 평화적인 촛불혁명으로 시종되었다. 물론 반동세력의 집회도 있지만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촛불혁명의 목표는 1차적으로는 무능 부패한 박근혜와 그 측근들의 추방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박정희로부터 파생한 총체적인 적폐의 청산에 있었다. 초헌법적인 권력자, 범죄적인 정경유착, 정보기관 ‧ 검찰 ‧ 경찰 ‧ 사법부 등 공권력의 사유화, 언론장악, 지역 편중과 차별 등 반민주ㆍ반공화국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명예혁명이다. 한 마디로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린 박정희가 남긴 군사문화의 잔재와 인맥의 청산에 있었다.

1961년 박정희 중심의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군사쿠데타는 한국현대사의 분기점이다. 이승만의 백색독재를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민혁명으로 타도하고, 7ㆍ29총선으로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었다. 박정희는 출범한 지 8개월밖에 안된 장면 정부를 부패를 이유삼아 전복시키고 헌법을 유린하면서 군사정권을 수립하고 장장 18년 동안 1인 절대권력을 유지하였다.

1905년 일제의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개화ㆍ개방과 근대화의 기회를 빼앗긴 채 40년의 식민통치를 겪었듯이, 4ㆍ19 이후 모처럼 민주와 자유, 통일과 경제개발을 모색하던 한국 사회는 박정희 일당의 군부쿠데타로 암흑의 철권통치 시대를 겪어야 했다. 이후 전개된 유신쿠데타와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의 꿀맛을 즐겨온 전두환 일당의 정치군인에 의해 제2의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을 온통 군사독재의 장막에서 숨도 크게 못 쉬는 참혹한 시대를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고, 신판 귀족이 되고, 90% 이상의 국민은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빈부격차와 세계 최고라는 자살율ㆍ출산율ㆍ청년실업율ㆍ노인빈곤율의 ‘헬조선’의 사회에서 ‘개ㆍ돼지’처럼 살아야 한다.

세계사적인 경제개발의 연대에 어느 정도의 발전을 두고, 다수 국민의 헌신과 희생계층에 대한 인식 없이, 마치 박정희 1인의 업적인 것처럼 믿고 우상화하는 것은 군사 독재자들의 우민화 정책의 산물이며 그 후예들의 농간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효심’에서 비롯된 국정교과서가 박정희의 공적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는 데서도 ‘박정희 유령’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 구조를 풀어가는데 거쳐야 할 하나의 열쇠인 ‘키워드’이다. 그는 친일파요 민족반역자로서 또한 일제의 주구로서 해방 후 열 두번도 더 변신과 배신을 거듭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배반한 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기회주의의 줄을 타는 재주를 부려왔다.

그는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 구조를 유선형으로 연정하면서 정치적 야심을 달성코자 획책했다. 그의 개발 독재는 일제식민지 경영의 만주괴뢰국 관리 경영 수법에 일제 전쟁 추진의 총력전 국방국가의 군국주의 기법을 가미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일본 국수주의가 식민 지배의 과정에서 키워낸 모범생으로서 일제식민주의의 일부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의 민족문제에서 민족정기와 통일 기반 조성의 과제는 박정희의 반민족적 유산을 청산함으로써 시작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반민주적 망령과 그 추종자인 부폐 기득권 부류를 청산하고 박정희가 남긴 일제식민지식 지배구조의 찌꺼기를 청산, 극복해야만 이룩될 수 있다.

박정희의 DNA를 받았음인지 박근혜는 재임 중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에 타결하고 야당과 국민의 반대에도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을 체결하는 등 친일성향을 보여 비판자들로부터 “피는 못 속인다”라는 질타를 받았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박정희의 존재를 빼놓고는 한국현대사를 기술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는 크고 역할은 지대했다. 그에 관한 책과 논문ㆍ자료 등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평전ㆍ전기도 여러 권이 나왔다. 상당 부분이 그를 영웅화하는 것이고, 비판적인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영웅화’의 저자들은 막강한 언론사나 대학ㆍ연구소 등의 배경을 갖고 있어서 출판물과 영상물이 많이 홍보되었지만, ‘비판’의 경우는 정반대여서 일반 국민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도 빈부 양극화의 현상을 보여 준 셈이다.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2016년 가을께부터 나타났다.
‘박ㆍ최 게이트’가 돌출하기 직전이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창간 첫 해인 2007년부터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2008년과 2011년을 제외한 전후 7차례 조사에서 박정희는 단 한 차례도 오차범위 밖 2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일곱 번 중 네 번은 오차범위를 벗어난 1위였다.

그런데 2016년의 조사에서 노무현이 38.9%를 얻어 박정희의 28.8%를 훨씬 앞질렀다. 노무현 서거 이후인 2009년 조사에서 28.3%이다가 대선 국면이던 2012년에는 처음으로 박정희와 오차범위 안쪽으로 진입했고, 2014년에 오차범위 밖으로 박정희를 밀어냈다.

박근혜의 유일한 ‘업적’이라면 거듭된 실정의 결과 ‘박정희 향수’를 걷어내는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그래서 역사는 흥미롭다.

2018-12-03 13:07:4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coyotebush [ 2018-12-03 13:16:21 ] 

<개발 독재자> 박정희 평전 / 김삼웅


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민주화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해 왔다. 역사바로잡기와 민주화ㆍ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 분야 저서 30여권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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