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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회] 교사시절 미담 쏟아낸 관변자료
작성자 coyotebush

박정희는 1937년 3월 20일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문경 서부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1940년 3월까지 3년여 동안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5ㆍ16쿠데타 후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시절 그의 비서인 이낙선(상공부정관 역임)은 <이낙선 비망록>을 작성했다. 박정희의 어린 시절로부터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의 여러가지 일화를 채록하여 담았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3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점이라 증언자들은 대부분 ‘권력의 입맛’에 맞는 얘기들을 쏟았을 터이다. 또는 기록 과정에서 ‘맛사지’ 하기도 했을지 모른다. 한 제자는 “방정환 선생을 연상시키는 선생님”이라 회고하고, 다른 제자는 “5ㆍ6명의 선생님들은 둑에서 벌벌 떨고 있는데 박정희 선생님이 다 죽은 아이를 물속에서 건져내 인공호흡으로 살려내 하느님 같이 고마웠다.”라고 증언했다.

증언은 이어진다.

“박 선생님은 우리 끼리 있을 때는 꼭 우리말로 쓰자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철없는 우리들은 아무 의미도 모르고 ‘선생님 조선말 하면 퇴학당하는데 왜 그래요’ 하고 반박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박정희 선생이 조선어 시간에 태극기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박정희는 복도에 입초(立哨)를 배치한 뒤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 주었다.”, “박 선생은 음악시간에 황성옛터와 심청이의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박 선생을 통해서 임시정부가 상해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박 선생은 일본인 교사들하고도 사이가 좋았는데 아라마 교장과 야나자와 교사와는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박 선생은 운동회 때 100m 달리기에서 일본인 교사 쓰루다에게 졌는데 연습을 많이 하여 다음 시합에서는 그를 물리쳐 문경에선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라는 등의 일화 또는 비화이다.

더러는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가공이거나 과장되기도 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관변자료’는 믿기 어려운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박정희가 돌연 교사직을 던지고 일본이 지배하는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것도 그의 ‘민족주의 성향’과는 걸맞지 않는 부문이다.

박정희는 교사 시절에 학교 근처에 있는 김운사 여인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한 달 하숙비는 8원, 월급 초봉은 42원이었다. 문경군청 농회 기사인 하동식이 아래채에서 하숙을 하여 동갑인 두 사람은 자주 어울려 막걸리를 마셨다.

이때부터 마시기 시작한 막걸리는 그가 집권하여 정치인이 되고 선거를 치를 적이면 어김없이 선거홍보용으로 등장하였다. 농부들과 스스럼없이 논둑에 앉아 막걸리잔을 든 모습이었다. 당시는 농촌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아 농민표가 중요했다. 박정희가 암살당할 때 궁정동 연회장에는 고급 양주가 놓여 있었다. 초년 교사 시절과 집권초기의 막걸리 애호는 독재자가 되면서 고급양주로 취향이 바뀐 것이다.

박정희의 문경 시대를 살펴보면, 그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한 교사 이상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개조해보려는 프로그램도 진행시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면 그는 새벽이면 언덕에 올라 나팔을 불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박 선생 하면 나팔소리”를 연상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이는 그가 훗날 대통령이 된 후 “새벽종이 울렸네/새아침이 밝았네/우리 모두 일어나/새마을을 가꾸세”라는 노래를 만들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마을 청년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어 출장 공연을 다니기도 했으며, 주말에는 학생들을 불러모아 뒷산에 올라가 전쟁놀이를 했다. 즉 그의 일과는 근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으며, 그가 가르치는 것도 교과과정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그는 기능적 교사가 아니라 작은 지도자처럼 행동했다.

2018-12-13 10:10:43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coyotebush [ 2018-12-13 10:19:15 ] 

<개발 독재자> 박정희 평전 / 김삼웅

1   coyotebush [ 2018-12-13 10:18:54 ] 

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민주화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해 왔다. 역사바로잡기와 민주화ㆍ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 분야 저서 30여권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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