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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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사중의 白眉
작성자 dakshang

화씨지벽.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 는 감정결과에 격노한 여왕이 변화 씨를 월형에 처하였다. 이후 그 여왕이 죽은 뒤 무왕(武王)이 즉위하여 무왕에게 다시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렸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품에 안고 궁궐 문 앞에서 밤낮으로 통곡하였다. 이윽고 문왕이 그 까닭을 물은 즉, 화씨가 답하여 '발이 잘려서 우는 것이 아니고 보옥이 하찮은 돌과 같이 취급당하고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니 너무나 슬퍼운다.'하였다.

문왕이 다시 세공인에게 맡겨 옥돌을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영롱한 보석인지라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이라 명하였다.

이후 趙의 혜문왕 손에 들어가게 된 화씨구슬은 구슬의 탄생비화와 함께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이를 탐한 강국(强國) 秦의 소양왕 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趙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秦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쳐들어 올 것이고 들어주자니 城은 고사하고 화씨구슬만 빼앗길 것이 아닌가-

여기서 인상여의 완벽(完璧)으로 이어진다.

완벽.
[혜문왕은 초나라(楚)로부터 "화씨벽(和氏璧)"이라는 보물을 얻었다. 그러자 진나라(秦)의 소양왕이 그 소식을 듣고는 사자를 보내 화씨벽과 자국의 성 15개를 바꾸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혜문왕은 염파를 비롯한 대신들을 불러 이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진나라에 주자니 속아서 성을 얻지 못할 것이 걱정되었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 군대가 쳐들올까 걱정되어 대책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때에 환자령 목현이 인상여가 자신을 도와주었던 일을 말해주며 그를 사자로 보낼 것을 권하였다.

혜문왕은 곧 인상여를 불러 의논하자, 인상여는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진나라가 성을 가지고 벽옥을 얻으려는데 조나라가 주지 않으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습니다. 조나라가 벽옥을 주었는데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게 있습니다. 두 계책을 비교해보면 잘못의 책임을 진이 지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혜문왕이 누구를 사자로 보내면 좋겠느냐고 묻자, 인상여는 "왕께 사람이 없다면 신이 벽옥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나라로 들어오면 벽옥을 진나라에 두고,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이 벽옥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돌려 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사신이 되기를 자청하였다.

벽옥을 가지고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 인상여는 장대(章臺)에 앉은 소양왕과 만나 화씨벽을 건넸다. 그러나 인상여는 벽옥을 받자 미인과 군신들에게 보이며 자랑하기만 하는 소양왕의 모습을 보고 진나라가 성을 넘겨줄 뜻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인상여는 "실은 그 벽옥에 하자(瑕疵)가 있으니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이를 받아들더니, 기둥에 기대어 선채 관이 벗겨질 정도로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선 노한 모습으로 "조나라 왕께서는 대국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공경을 다하고자 5일동안 목욕제계를 하고 신에게 벽옥과 국서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신을 대하시는 예절이 거만하고, 벽옥을 받자 미녀에게 보이며 신을 희롱하셨습니다. 신이 보건데 성읍으로 보상을 뜻이 없으므로 벽옥을 조나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신을 협박하신다면 지금 제 머리를 벽옥과 함께 기둥에 부딛쳐 부수고 말겠습니다."라며 소양왕을 협박했다. 벽옥이 깨질까 겁이 난 소양왕은 지도를 가져와서 약속한 15성을 내줄 것을 이야기했으나, 인상여는 이를 믿지 않고 소양왕에게 조나라 왕이 그랬던 것처럼 5일 동안 목욕재계를 하며 자신을 구빈(九賓)의 예로 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 사이에 광성전(廣成傳)에 묵게 된 인상여는 종자를 시켜 벽옥을 가지고 몰래 조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5일 뒤에 목욕재계를 마친 소양왕이 약속대로 인상여를 구빈의 예로 맞이하였다. 그러자 인상여는 "진나라는 목공(繆公) 이래 20여 군주들 모두 약속을 분명하게 지킨 적이 없습니다. 진왕께서 성을 내주실 뜻이 없는 듯 하여 이미 조로 돌려보냈습니다. 15성을 넘겨주신다면 조나라에서는 즉각 벽옥을 보낼 것입니다. 신이 대왕을 속인 죄는 죽어마땅하오니 끊는 솥에라도 들어가겠습니다."라 대답했다. 소양왕과 진나라 신하들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몇몇 신하들은 인상여를 죽일 것을 주장하였으나, 소양왕은 "지금 인상여를 죽인들 벽옥을 얻지 못할 뿐더러 조나라와의 관계만 끊어질 뿐이다."라며 인상여를 잘 대접해 돌려보냈다. 인상여가 돌아오자 혜문왕은 제후들 사이에서도 조나라의 체면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고 여겨서 그를 상대부(上大夫)로 삼았다. 이후 진나라는 조나라에 15개 성읍을 주지 않았고, 조나라 또한 진나라에 벽옥을 주지 않았다.

이처럼 인상여가 흠집없이 벽옥을 돌려받아 돌아온 일화에서 "완벽(完璧)"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되었다.] 위키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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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지벽 --> 완벽--> --> 문경지교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사중의 白眉.

그러나 희랍지역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꾸미지 말라'하여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이있어 화씨 못지않게 전해지고 있다.

2018-12-28 06:23:29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dakshang [ 2018-12-28 10:09:00 ] 

조(趙)의 혜문왕 당시에 인상여와 염파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宦官)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했다. 그래서 염파는 인상여를 만나면 망신을 주려 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가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 '왜 그렇게 염 장군을 두려워합니까?' 하였다. 인상여가 답하여 '秦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危殆)로워 질 것이 아닌냐'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 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 '비천한 사람이 장군(將軍)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 를 두고 문경지우라 하였고 '문경지교'라 불리기도 하였다. - 오늘날의 정치인간들도 이런 고사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받아들여 안보에 보탬이 되는 행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소귀에 대고 경 읽기와 같을 것이니 국민이 깨어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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