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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회] 일제패망 후 광복군 중대장
작성자 coyotebush

일제의 패망과 함께 박정희는 8월 17일 주둔지 밀운(密雲)에서 직위가 해제되고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그것도 같이 근무하던 중국인 장교들에 의한 조처였다. 그가 속한 제8단은 중국인들이 대부분이고 단장도 중국인이었다. 더이상 이 부대에 남아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중국인들 중에는 일본인들은 물론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닥치는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박정희는 이주일ㆍ신현준 등과 함께 8단을 떠나 봉천을 경유하여 9월 21일 베이징에 도착하여 과거 일본군이나 만군출신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광복군에 들어갔다. 당시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는 일제패망 후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재중 만군ㆍ일본군 출신 한국청년들을 모아 광복군을 확대하고 있었다. 박정희 일행은 이렇게 하여 잠시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박정희는 광복군 제3지대 주(駐) 평진(平津) 대대의 제2중대장을 맡았다. 기구한 운명이었다.

만군ㆍ일본군 출신들이 중국(만주)에서 해방과 함께 광복군에 편입된 사연을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된 장준하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 통역이 아니면 일선 지구를 돌아다니는 아편 장사나 일군 위안소의 포주들까지도 하루 아침에 광복군 모자 하나씩을 얻어 쓰고 독립운동가, 망명가, 혁명가를 자처하는 목불인견의 꼴이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타국에 있는 동포 재산을 이런 자일수록 앞장서 몰수하기가 일쑤였고, 광복군도 1,2,3 지대로 나뉘어 대립을 보이고 있었다.(……)이런 상태에서 과거를 불문하고 독립운동자의 이름을 마구 나눠주었던 것이다. 아무나 들어오면 귀히 맞아들여(?) 광복군 모자를 하나씩 씌워주었다.

박정희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다 함께 광복군에 편입되었던 신현준은 “만군 계급 순으로 자신이 제1대대장을 맡고 이주일 중위와 박정희 중위가 각각 1,2중대장을 맡았다”면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베이징에 갈 때까지도 우리는 광복군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8단에 있으면서 광복군과 비밀리에 관련을 맺었다는 것은 사실무근입니다. 우리는 베이징에 가서도 광복군에 들어갈 것인지 의논한 후 “해방도 되고 했으니 일단 들어가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시절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름이 밝혀졌다. 박정희는 1940년 4월 만주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한 이래 5년여 동안 만군→일본군→광복군을 거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체험자가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항복한다고 발표했을 때 박정희는 매우 심각한 정체감의 위기를 겪었다. 그의 ‘혼돈스러운’ 감정상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일본 관동군의 장교로서 치욕적인 패배를 ‘괴로워했고’ 또 한편으로는 일본 압제로부터 재동화(re-identification)의 위기를 겪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전통적인 조선 분위기에서 조선인 가정 안에서 태어나고 길러졌다손치더라도 결국 그는 ‘충직하고 진실한 일본제국 신민’으로 교육받고 훈련되었다. 일본이 패배한 그 순간까지 그는 일본제국 아래에서 생활했고 그 체제내에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아무리 성공적으로 일본화되었다해도, 일본군복을 입을 때나 안입을 때나 그의 육체와 정신은 조선인이었다. 더우기 그가 한국에 재동화되고 이전의 일본제국에 대한 정체감을 벗어던지는 것이 단지 그의 일본제복을 한국것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5ㆍ16쿠데타 이후 박정희의 추종세력과 사이비 독립운동가 중에서 그의 광복군 편입을 과장하여 독립운동가로 미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세간의 조롱거리에 그치고 말았다.

2019-01-08 10:58:15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coyotebush [ 2019-01-08 10:59:52 ] 

<개발 독재자> 박정희 평전 / 김삼웅

1   coyotebush [ 2019-01-08 10:59:19 ] 

전 서울신문 주필,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민주화 명예회복과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집필해 왔다. 역사바로잡기와 민주화ㆍ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 분야 저서 30여권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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