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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식이라는 말의 정의를 모욕하는 자들
작성자 cambridge

어제 내가 점심을 몇 시에 먹었더라... 열두 시 반 쯤 먹었는데. 그리고 나서 저녁을 여덟 시 쯤 먹었으니 대략 인터벌이 일곱 시간 반 정도. 그럼 나는 저 자한당 인간들보다는 두 시간 더 단식했네. 점심 먹고 저녁 끼니되면 다시 먹는 매우 당연한 행위를 단식이라고 부를수도 있는 거구나.

자유당 소속 의원들(이라고 부르기 너무 쪽팔린 집단)이 단식이란 말의 정의를 바꾸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론 단식은 목숨을 건 투쟁 수단입니다. 내가 굶어 죽을지언정,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말하고 관철시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단식이라는 수단을 동원합니다.

단식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천성산의 도롱뇽이라는 상징으로 유명한 지율 스님이나, 유민아빠 김영오 씨 등.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그 단식을 통해 지방자치제를 쟁취했고, 보름달 빵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김영삼 대통령도 야당 총재시절 단식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그의 정치적 결기를 보여주곤 했었습니다. 정청래 의원의 단식도 꽤 기억나는 장면이지요.

그래서 단식은 결기의 상징이며, 자기 몸에 에너지원이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막고 그것으로 남들이 자기의 주장에 동조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다섯 시간 반 단식하기? 저녁을 일곱 시 쯤 먹고 그 다음날 아침을 일곱 시 쯤 먹었다고만 쳐도, 식사시간이 한 두 시간 걸렸다고 해도... 저들이 단식하는 시간 다섯 시간 반 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지요.

물론 이거저거 처먹을 거 많은 이들이 먹을 거 앞에 두고 참는 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세월호 단식 현장에 나타난 일베 종자들이 저지른 폭식투쟁이란 방식의 조롱은 단식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고 가장 잔인한 방식의 조롱이었기에 처벌받아 마땅하며, 그걸 사주한 자들도 마찬가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자유당의 '단식'은, 그 단식이라는 단어가 가진 신성함을 무시하고 가장 웃기는 방식으로 단식을 무시한 혐의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 처벌의 방식 중 가장 효율적인 건, 다음 총선에서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떨어뜨리는 겁니다. 정치란 것의 희화화가 이정도가 됐을 때, 국민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시애틀에서...권종상 [시애틀 우체부의 사는이야기]

2019-01-26 10: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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