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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4회] 너무 빨리 썩은 군사정권, 4대의혹사건
작성자 coyotebush

군사정권이 당초 혁명공약에서 내세웠던 ‘부정부패 일소’는 날이 갈수록 퇴색해지고 자신들이 더욱 부패하여 세간에서는 ‘구악 뺨치는 신악’이 더 문제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박정희정부는 민주공화당의 사전조직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세칭 ‘4대의혹사건’을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고사건을 가리키는 4대의혹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주동이 된 비리횡령사건이다.

정치활동의 금지를 규정한 정치정화법의 발동 속에서 박정희정권은 민정이양에 대비, 김종필이 책임을 맡고 있던 중앙정보부의 비밀공작 아래 공화당의 사전 창당 작업을 추진했다. 이런 과정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4대의혹사건을 저질러 자금을 충당하고자 했던 것이다.

민정이양 후 제4대 국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그 내막이 일부 폭로되었으나, 끝내 의혹사건으로 남은 이 사건들은 그 수법이 극히 치졸, 대담할 뿐 아니라, 그 직접적인 피해가 일반국민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군사정부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들이었다.

국민의 여론이 악화되자 1963년 12월 24일, 이 사건으로 군정의 제2인자이며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 외유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제2대 중정부장이 된 김재춘의 지휘 아래 검사 7명이 ‘4대의혹사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활동을 벌였다.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유원식,천병규 등은 1963년 증권파동 사건으로 구속된다.

증권파동이란 한마디로 1962~1963년 중앙정보부가 대한증권거래소를 직접 장악, 주가조작을 통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을 말한다. 전 중앙정보부 행정처장 이영근, 관리실장 정지원 등은 농협중앙회장 오덕준, 부회장 권병호에게 압력을 넣어 당시 농협이 보유하고 있던 인기주인 한국전력주 12만 8천 주를 시가보다 5% 싼 가격으로 방출시켰다.

이렇게 해서 얻은 8억 6,224만 6,400환을 증권업 유경험자인 윤응상에게 자본금으로 대주어 통일ㆍ동명ㆍ일홍의 세 증권회사를 설립하게 하는 한편, 대한증권거래소 총 주식의 약 7할을 점유케하고 윤유상의 심복인 서재식을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세웠다. 이렇게 하여 윤응상의 독무대가 된 대한증권거래소는 증권거래법 및 거래소의 사업규정 등을 무시해 가면서 윤응상계의 증권회사를 불법 지원, 이들 회사의 주가를 폭등시켰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약속한 결재를 이행하지 않는 방법으로 주가를 폭락시켜 5,340명에 달하는 선의의 군소 투자가들이 138억 6천만 환이라는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자살소동을 빚게 하는 등 큰 물의를 일으켰다.

워커힐사건은 5ㆍ16이 난 그해 가을 김종필의 중앙정보부가 외화를 획득한다는 명분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동구 광장동 광나루 일대 18만 평에 동양 최대의 관광단지인 워커힐을 건설하면서 그중 상당액수를 중앙정보부가 횡령한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총규모 60억 환을 들여 이른바 사단법인 워커힐 관광사업 시설을 착공한 후, 교통부로 하여금 관광공사법을 만들게 하여 관광공사를 설립, 교통부 장관이 주관하게 했다. 그러나 공사도중 산업은행의 융자거부로 시설공사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교통부 장관 박춘식, 관광공사 사장 신두영은 62년 8월부터 63년 2월 사이에 법적ㆍ업무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부주식 출자금 5억 3,590만 9천여 환을 워커힐 이사장 임병주(당시 중정 제2국 제1과장)에게 전용 가불하게 하여 워커힐을 건립하는 데 협조했으며, 임병주는 그중 막대한 공사자금을 횡령했다. 뿐만 아니라 교통부 장관과 각군 공병감에게 압력을 넣어 각종 군장비와 군인들을 동원, 무상 노역하게 하는 등의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다.

새나라자동차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일본제 승용차를 불법 반입한 뒤, 이를 시가의 2배 이상으로 국내시장에 판매하여 거액의 폭리를 취한 사건이다. 61년 12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한일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일본 야스다 상사의 사장인 재일교포 박노정을 만나 자동차 공업에 대해 의견교환을 한 결과, 박노정은 안석규 전무를 한국에 파견키로 했다.

안석규는 중앙정보부 차장보 석정선과 접촉, 그의 도움으로 새나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정부에서는 관광용 자동차 4백 대를 수입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새나라회사가 대행, 수입판매케 했다. 이 과정에서 석정선은 회사의 부지 선정 및 구입을 알선해 주도록 인천시장에게 압력을 넣는 한편, 자동차 원자재 수입에 필요한 자동차보호법 초안을 제출하도록 상공부에 압력을 가했다.

빠징고 사건은 법적으로 금지된 도박기계인 빠찡고 1백 대를 재일교포의 재산반입인 것처럼 세관원을 속여 국내에 수입하도록 허용하고, 서울시내 33곳에 빠찡고장 개설을 승인하려 한 사건이다.

증권파동과 관련하여 이영근ㆍ윤응상ㆍ서재식 등이, 워커힐 사건와 관련하여 석정선ㆍ임병주ㆍ신두영 등이, 새나라자동차 사건과 관련하여 석정선이, 빠찡고사건으로는 김태준이 검찰과 군법회의에 송치되었을 뿐 배후조종자를 불문에 부쳐졌다. ‘부패일소’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정권은 너무 빨리 부패했다.

2019-03-16 07: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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