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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7회] ‘책봉’ 받고자 미국행
작성자 coyotebush

군인 박정희가 추구하는 일관된 목표는 권력이었다.

손쉽게 쿠데타에 성공하고 혁신계 인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정권의 승인을 받고자 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장도영을 반혁명 이유로 숙청하고, 쿠데타에 앞장섰던 다수의 동지들도 숙청함으로써 군부를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다.

남은 길은 권력의 유지와 연장이었다.

혁명공약에서 과업을 마치면 양심적인 민간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수사이거나 거짓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장기집권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인정을 받는 일이 시급했다. 고려 멸망 이후 조선왕조에서 정통성이 취약한 군주는 중국(명ㆍ청)에서 공인(책봉)을 받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해방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12년 독재를 자행하고, 장면 역시 미국에 기댄 일이 적지않았다.

박정희의 경우는 공산주의 전력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항상 견제와 불신의 대상이었다. 거기다 합법적 권력취득이 아닌 쿠데타를 통한 변칙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책봉’을 받고자 시도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된 국가들의 민족주의자들을 배제하였다. 미국에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해방투쟁의 지도자들인 한국의 김구, 베트남의 호치민이 배제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 대신 식민지 종주국의 부역자나 기회주의자를 선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박정희는 약점이 많아서 다루기 쉬운 인물이었다. 쿠데타 이후 혁신계와 민족주의자들을 처리(단)하는 데서도 충성심은 충분히 나타났다.

박정희 팀은 미국 정부에 줄을 댈만한 인물을 물색한 결과 목사 한경직이 선택되었다.

5ㆍ16 직후 박정희 장군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고 있는 미국 당국자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한경직은 민간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일권ㆍ최두선ㆍ김활란 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경직은 군인들의 약속을 강조하며 미국 정부가 한국을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하였다.

친미 인사들의 로비와 케네디 정부의 필요에 따라 박정희는 1961년 11월 13일부터 존ㆍFㆍ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11월 14일 오후 백악관에서 1시간 20분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신문에 보도된 회담요지.

맹호부대 순시차 월남에 들른 박정희 전 대통령를 채명신 사령관이 안내하고 있다.

케네디 : (전략) 본인은 어떻게 하면 월남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습니다. 최후의 수단은 물론 미국 병력을 투입하는 것입니다만 진정한 해결책은 월남인 스스로가 외국 원조에 의존함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요. 월남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박 의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정희:러스크 국무장관과 해밀턴 국제개발처장에게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미국이 너무 혼자서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세계의 각국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부담을 나누어져야 자유세계 전체의 짐이 증강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한일국교정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반공국가로서 한국은 극동의 안보에 최선을 다해 기여하고 싶습니다. 월맹은 잘 훈련된 게릴라부대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월남식의 전쟁을 위해서 잘 훈련된 100만의 장정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승인하고 지원한다면 한국정부는 월남에 이런 부대를 파견할 용의가 있고 정규군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지원군을 모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자유세계가 단결되어 있음을 과시하게 될 것입니다. 출국하기 전에 이 문제를 가지고 한국군 지휘관들과도 토의했습니다. (후략)

케네디 :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미국은 베를린 장벽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구 전체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본인은 맥나마라 장관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2019-03-26 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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