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위와 같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500여 명이 광주 시내에 나타나던 날 (5.22) 10시 45분에 저는 도청 앞에서 취재하고 있었는데, 항쟁본부에서 스피커를 통하여 연. 고대생이 광주에 도착했다고 하며 위와 같은 방법으로 환영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 그 다음날인 5월 23일 오후경 복면 부대가 나타나 시위를 도욱 과격화시키고 확산 시켰다고 했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위하던 가요?
답: 저는 당시에 도청앞 및 금남로 일대에서 복면부대들이 하는 시위광경을 지켜보았는데, 그들은 수십대의 버스와 트럭등 차량을 타고 다니며 몽둥이를 각자 하나씩 들고 차량을 치면서 [전두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 [계엄해제하라], [김대중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를 통하여 주위에 있는 기존의 시위대들로 하여금 시위를 과격하게 하도록 유도했으며, 그때부터 시위는 더욱 가열대고 확산 되었습니다.
문: 복면 부대들이 언제까지 시위를 주도했나요?
답: 그들은 5월26일, 재 진입작전이 임박하자 어디론가 전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2) 모란봉의 꽃으로 불리던 전옥주(본명 전춘심) 의 증언
시스템클럽 회원 한 분이 2013년 6월에 종주시내에 민원을 냈습니다.
민원내용: "1980년도 당시 광주에서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높이 평가하고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당시 5.18단체측이 널리 홍보한 연.고대생 600명의 시위 가담에 관한 사실입니다. 이들의 실체 여부와 이들의 당시 활동상황에 대하여 정부축의 자세한 해명과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응신자: 광주광역시 인권담당담자, 고경미( 613-2081)
귀하께서 문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알아본 결과 80년 항쟁일지에 "스피커를 통해 연.고대생이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발표했다" 라는 기록이 있으나, 직접 가두방송을 한 전옥주씨는 그 당시 전달받은 쪽지만 읽었을뿐 사실여부는 확인 하지 못하였다고 증언하고 있고, 5.18 민주화 운동에 연.고대생 참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였으나 현재까지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끝.
3) 5.18 기념 재단의 공식기록
5.18 기념 재단의 홈페이지에 "광주사태 타임라인"이 게시되어있다. 광주사태 시간표이다. 여기에 기재된 일지 중 5월22일,15:08분 상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서울서 대학생 500여 명이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12년 12월 27일, 대 법원으로 부터 무죄선고를 받음으로써 북한 특수군 600명에 대한 이슈가 2013년 초부터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이에 코너에몰린 5.18 기념재단이 2013년 7월 14일경, 기록을 슬그머니 바꾸어 놓았습니다. "시위 도중 연행된 시민, 학생 등 800여 명이 석방되어 "도청도착"이라고 변조시킨 것입니다. 5월 21일 도청을 접수한 세력이 바로 이 연.고대생 600명이었으며, 광주 도청 앞에서는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5월22일, 이들 북한 특수군을 서울서 온 대학생 또는 연.고대생으로 부르며 광주시의 이름으로 환영식을 거행해 주었습니다. 당시의 계엄 하에 연. 고대생 600명이 구성되어 광주로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