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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원봉에 대한 팩트 첵크
작성자 kangdong

자유한국당이 의열단장 김원봉에 대한 서훈 검토와 재평가 흐름에 반발하고 있다.

일제시대때 공산주의자는
일제의 전범기업과 결탁한 극우반공 자본주의에 반대하여서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하여서 항일투쟁을 한 독립투사들이다.

공산주의자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일제의 천황제에 위협이 되므로 소위 치안유지법을 만들어서
이를 위반한 사상범으로 낙인을 찍어서 무수한 독립투사들을 구속 고문 투옥 살해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이 진실을 마주하고 판단하도록 팩트요약해 본다.

'김원봉'은 일본경찰에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은
사상 최고의 현상금 '100만원'이 걸린 신출귀몰 '독립투사'였다.
당시 김구의 현상금이 '60만원'이었다.

당시 100만원은 21세기 화폐가치로 '340억원'이며,
빈라덴 540억원이전 최고의 현상금이었다.

해방후 초대 국방부장관 역임.
본래 소련 중국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일제 때 최고 악질 고등계 형사 '노덕술(마쓰우라 히로)'이 해방후에도
이승만정권의 장택상에 의해 그대로 '수사경찰청 수사과장'에 기용되어,
독립투사중 최고 거물인 '김원봉'을 자택에서 체포하여
'뺨'을 때리는 등의 갖은 치욕을 주었다.

참고로 어이없게도 친일반역행위로 거부가 된 노덕술은 '독립유공자'로 돼 있고,
그 더러운 돈으로 자자손손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아들 노재봉은
대통령비서실장(90),22대국무총리(91),14대국회의원,서울디지털대학총장 역임.

이를 계기로 고민하던 김원봉은,
이승만에 빌붙어 권력층에 포진하여 나날이 승승장구하는
'친일반역자'들의 '살해위협'에 시달리다,
결국 남쪽을 버리고 월북을 선택한다.

1948년 4월 평양 '전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여 북한에 머물며 이후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실망으로 월북,
김일성도 큰 인물을 어쩔수 없어 자리 하나 줬으나
북에서 평가절하, 남에서라도 제대로 평가해야.

현 보훈처는 골치아픈 뜨거운 감자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지정을 피하고 싶어하지만,

이제 그의 '공과 과'를 동시 관조할 정도로
국민의 의식은 매우 성숙했다.

dongsik Kang

2019-04-14 13: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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