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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3회] 권력의 타락, 정여인 사건으로 ‘육박전’
작성자 coyotebush

박정희는 재선에 성공하고 국회에 다수석을 확보하면서 더욱 오만해졌다.

5ㆍ16 이후 10여 년 동안 절대권력을 휘둘러온 그에게 이제 거칠것이 없었다. 측근들은 무골충, 집권당은 어용화되었다. 정부 각 부처나 정보기관은 철저히 사설기관으로 전락했다. 그에게 충언하거나 고언을 해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공화당 소속의원으로 쓴소리를 하면서 한때 3선개헌을 반대했던 전 국회의장 이만섭의 증언.

박 대통령은 평소에는 소탈하고 인정이 많았으나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거나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자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철퇴를 가했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4대 의혹사건과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일찍부터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났으며, 이북 출신들이 결속하여 정일권 총리를 차기 대통령으로 옹립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은밀히 뒷조사를 시킨 적도 있었다.

최측근 심복이었던 윤필용 장군을 감옥에 가두었고, 윤필용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소문난 이후락 전 비서실장도 의심을 계속하다가 7ㆍ4남북공동성명을 위해 이북에 다녀온 후 후계자 중 한 사람이라는 외신 기사가 나오자 그를 멀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만고의 철칙이다.

1970년 3월 미모의 20대 여성이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총을 쏜 범인은 친오빠라고 경찰은 발표했지만 많은 의혹이 뒤따랐다. 1970년대 벽두를 장식한 이른바 '정 여인사건'의 막이 올랐다.

사건은 거대한 정치스캔들로 변하고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대정부질문의 이슈로 삼았다. 정 여인에게 아비를 알 수 없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박정희의 아들이냐, 국무총리 정일권의 아들이냐를 둘러싸고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녀는 정부의 특수층 아니면 불가능한 복수여권을 소지하였고 미화 2.000달러가 현금으로 나왔다. 신민당 조윤형 의원이 국회에서 풍자 가요시를 낭송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나를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영원히 우리만 알았을 것을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성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것을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예나 이제나 경찰은 특권계층에는 약하다. 최고위층의 연계설이 나돌면서 경찰수사는 친오빠가 동생의 방탕을 보다 못해 죽인 것처럼 호도되고, 그 대신 청와대에서 ‘육박전’이 전개되었다.

국회에서 신민당의 조윤형 의원이 정인숙 사건 풍자 가요를 낭송했을 때는 청와대 안방에서도 이미 그 문제로 ‘육박전’이 한차례 크게 벌어진 뒤였다. 육박전이란 육영수와 박정희의 부부싸움을 시중에서 그 성인 ‘육’과 ‘박’으로 표현한 조어였다.

정인숙이 관계한 권력자 26명의 이름이 언론에 보도되고 아들의 아버지에 관한 풍자 노래가 널리 알려지자 육영수는 참지 못하고 박정희에게 대들었다. 사실 여부를 따지면서 부부싸움은 험악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박정희는 화가 나서 재떨이를 던졌으며 이것이 육영수의 얼굴에 맞았다. 육영수의 눈자위에 푸른 멍이 든 것을 외부에서 온 여성계 방문객과 청와대 출입기자 일부가 목격했다. 이것이 바깥에 알려지면서 ‘육박전’으로 희화된 유행어가 생긴 것이다.

성일이의 아버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모두 죽었다. 성일이 친부가 박정희와 정일권으로 압축된 듯도 했으나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그대신 권력사회의 부패ㆍ타락상이 베일에 가려진 채 널리 회자되었다.

성인이 된 정성일은 1991년 6월 5일 서울 가정법원에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6월 27일 외삼촌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하고 다음날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때 정일권 측에서 그에게 80만 달러를 주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는 1993년 다시 정일권을 상대로 서울 가정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냈으나 소송이 진행되는 중 정일권이 사망함으로써 친자확인은 영구미제로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성일은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해 “최근 정일권 씨가 나와의 직접 통화에서 ‘당신은 나의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아들’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만인지상 일인지하’ 국무총리가 모시던 분이라면 말 그대로 대통령밖에 없다. 정성일은 자신이 박정희의 아들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친자확인 소송을 냈다가 취하한 그의 행태로 미루어 그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2019-04-25 12: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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