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광주 금남로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내 곳곳에서 5.18 관련 행사가 열리고, 투쟁의 상징인 금남로와 구 전남도청 부근은 전국에서 온 순례객들로 가득하다. 그 옆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노력해 건립된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시퍼런 멍자국이 남아 있다.
어느덧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39주년을 맞는다. 39년 전 그날,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났다. 전두환은 공수부대를 광주로 보내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에 광주시민이 분노하여 시민군을 조직하고 격렬하게 항거했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인 전남도청이 계엄군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광주 항쟁은 5월 27일 새벽에 끝이 났다.
지금도 생각 난다.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던 새벽, 상공에 뜬 헬기에서 들려오던 소리. “시민 여러분, 광주에 평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평화였을까. 그때 나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전남도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명동 농장다리 부근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밤새 들려오는 총소리, 군화발 소리, '피묻은 벗들의 신음소리'...아아, 우리들의 광주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게 운명이었을까. 그 후 나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절로 갔다가 반강제 입대를 하고 제대후 다시 입시 준비를 해 다른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4년 내내 데모만하다가 6월 항쟁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나는 5.18과 6월 항쟁을 모두 대학생 신분으로 현장에서 싸운 셈이다. 겨우 졸업은 했으나 변변한 곳에 취직을 할 수가 없어 대입학원에서 언어와 논술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소위 '스타 강사'로 돈도 제법 벌었지만 경험 없이 사업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했다. 그후 소설 창작 작업에 전념했고 몇몇 문학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나의 운명이 다시 뒤바뀐 것은 지난 2012년 대선이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NLL포기 음모, 사초 폐기 조작 등으로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후 나는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부터 인터넷 글쓰기가 시작되어 아고라에 5000편, 문팬에 2000편 총 7000편을 썼다. 소설로 치면 장편 소설 40권쯤 된다. 나는 그 글들을 원고료 한 푼 없이 날마다 썼다. 차츰 팔로어가 늘어나고 누적 조회수가 5000만 건이 넘었다. 내 본명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닉 com는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고라가 폐쇄되어 요즘은 문팬과 블로그에만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역사상 그 참혹한 현장에서도 은행 하나 상점 하나 안 털린 곳이 바로 광주였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나눠 주고,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돌보았다. 그들은 말했다. "내 자식 같고 이녁 동생 같아서" 참혹한 학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며, "아무라도 배고프면 살려야" 된다는 마음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광주는 아직도 아프다. 아직까지 발포 명령자를 색출하지 못했고, 일부는 시신마저 발견하지 못했다. 수구 언론들은 아직도 5.18을 북한 특수군이 침입하며 일으킨 '폭동'으로 왜곡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5.18을 비하하는 글로 넘쳐난다. 한국당은 아직도 5.18을 폭동으로 보고 유공자들을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도 황교안은 5.18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한다. 그 의도가 뭘까? 혹시 대형 불상사가 나길 은근히 바라고 잇는 것은 아닐까? 87년 노태우처럼 말이다.
토착왜구들이 보면 부글부글할 coma의 블로그 <사람사는 세상> 보러가기(아래주소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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