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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규재에 토론결투 신청 1
작성자 dakshang

정규재에 토론결투 신청

정규재가 조갑제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나섰다. 그 옆에 있는 김진도 마찬가지다. 김진은 한 때 조갑제 편을 들더니 요사이는 5.18에 대해 좀 잠잠해진 모양이다. 조갑제와 정규재는 며칠 전 뉴스타운tv에서 펼쳐진 조원룡 변호사와 박명규 박사와의 90분간 대담에서 상식과 지식의 기반이 일천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Gl6QGIbBq3w


정규재가 말한 것을 직접 간접으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북한군 600명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상상이 안 가기 때문에 600명을 믿을 수 없다.

2. 12.12는 분명한 쿠데타다. 따라서 5.18은 민주화운동이고, 북한군은 개입하지 않았다.

3. ‘까까’ 해서 가기만 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왜 시끄럽게 구느냐.

반 론

1. 제1항에 대한 반론

1) ‘600명’이라는 숫자는 내가 지어낸 숫자가 아니라 검찰기록, 안기부기록, 상황일지에 있는 기록이다. 이들 문헌들에는 이들 600명이 수행한 활동내용들이 기록돼 있다. 나는 단지 이들 활동 내용들을 눈에 보이도록 잘 정리했고, 정리해놓고 보니 이들 활동들은 절대로 광주의 부나비들이 벌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는 해석을 했다. 판사가 살인현장에 없었으면서도 사형선고를 내리듯이 나도 판사처럼 판단한 것이다. 광주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현장사진들에는 활동성격이 담겨있고, 주역을 담당한 어깨들의 모양과 자세가 담겨있다. 나는 이들이 절대로 광주 7~22세에 이르는 아이들과 양아치, 구두닦이, 껌팔이, 공돌이, 식당보이 등 천대받던 계급이 취할 수 있는 자세, 취할 수 있는 적전내용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 광주폭동은 광주의 희생자들과 처벌받는 사람들이 일으킬 수 있는 성격이 것이 아니었다. 사망자와 산 유공자의 정체를 분석해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사망한 154명의 연령 분포>

5.18기념재단에는 “사망자현황”이 있다. 총 166명이 기록돼 있고, 그 중 8명은 신원 불상으로 처리돼 있다. 그리고 이 5.18유공자 중에는 5월 20일, 버스에 깔려 사망한 함평경찰서 직원 4명(1942~43년)이 있다. 따라서 순수한 광주시민 사망자는 154명이다. 1960년생 이하는 60명, 1959년생 이상은 94명이다. 20세 이하가 40%, 21세 이상이 60%인 것이다. 여기에서 59년생은 9명, 58년생이 3명이다. 22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72명, 그 이상이 92명인 것이다. 비율로 보면 47% 대 53%다. 대략 주먹구구로 보아 절반은 22세 이하이고, 또 다른 절반은 그 이상의 연령대라는 것이다.

<154명의 직업 분포>

직업을 보면 어린이, 학생, 공원, 페인트공, 프레스공, 오토바이정비공, 가사 돕는 여성, 목공, 운전, 주점, 재수생, 방직공원, 가정주부, 농업, 판금공, 주방장, 미장공, 상업, 다방주방장, 주점, 식당보이, 이용사, 연탄배달원, 농아, 목공, 타일공, 행상, 공원, 구멍가게, 야채상, 노동, 보일러공, 기공사공원, 한약방점원, 표구점점원,당구장 점원, 방위병, 문방구점원, 사원, 선반공, 판화기능공, 샷슈공, 여관종업원, 재개공, 페인트공, 양계장종업원 등등이다. 여기에서 생략된 직업은 없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특급 유공자라는 것이다.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이자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인 박준성은 2005년 9월 5일 인터넷(http://blog.naver.com/logosist/17006521)에 “광주항쟁의 주역은 바로 노동자였다”는 제하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 .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이끌던 지도부가 광주를 빠져나간 뒤 광주를 지키며 끝까지 싸웠던 이들은 노동자, 농민, 기층 민중이었다. 사망자 162명의 직업분포를 보면 노동자가 가장 많은 35명, 학생이 31명, 무직이 23명, 불명 17명, 사무직 13명, 자영업 12명, 운수업 및 운전기사가 12명, 서비스직 11명, 농업 4명, 공무원과 방위병 각 2명이다. 학생사망자에는 대학생보다 초중고생과 재수생이 더 많다.”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17권 65쪽에는 5.18 주역이자 평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정상용의 회고가 들어 있다. 근 계엄 군법회의 제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자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지금까지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을 썼지만 나는 5월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위 정상용의 회고는 1982년 3월 15일 육군본부가 발행한 ‘계엄사‘(戒嚴史)의 분석과 일치한다. 계엄사 134쪽에는 극렬시위의 전위대들이 불량배, 구두닦이, 넝마주이, 공장근로자, 전과자, 무직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2019-06-14 21: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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