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말하리라. 누구든지 그가 내 이름으로 말할 내 말들에 귀를 귀울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그것을 요구하리라. 그러나 만일 대언자가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자기 뜻대로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혹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대언자는 죽으리라, 하였느니라.” 신명기18:18-20
“네가 혹시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주께서 이르시지 않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니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
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신명기18:21-22
킹제임스 흠정역 한영대역본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들을 대언자로 번역했다.
고린도전서13장9절에도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대언하나 완전한 것이 오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없어지리라.” 라고 하며 “대언(prophesy)”이란 말을 사용했다.
고린도전서14장에는 대언과 대언자란 말이 더 자주 등장하며 오히려 대언하는 것을 사모하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언자와 대언의 의미는 14장 전체의 의미와 그 방법으로 볼 때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성령께서 읽고 공부하는 각자에게 조명해 주시거나 깨달은 내용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본다.
구약에서 말하는 대언자와 대언이 신약에서 말하는 대언자와 대언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동일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만약 동일한 것이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나, 대언하는 사람들에게 신명기 말씀은 대단히 엄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약에서 대언자는 좀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고 말씀과 명령을 받아 전했으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고 굳이 다르다는 측면을 강조할 수 있을진 몰라도 내용적으론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수 많은 종교 지도자들, 목사들, 말씀 선포자들, 선생들이 주의 이름으로 수많은 대언들을 하는데,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전하는데, 그것들이 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아닌지는 뒤따라 일어나는 일이나 성취도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이 의미를 좀 더 쉽게 풀면, 주의 종이 목이 터져라 하나님 말씀을 외치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고 변화도 없으며, 성취는 커녕 양들의 마음문이 닫히고, 교회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어지러워지고, 양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이것은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요, 이르시지 않았다는 것이요, 오직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여러 각도로 적용할 수 있다. 주의 종이 말씀을 준비하여 입과 머리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요나 대언자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선포로도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고 일시적이나마 하나님께 돌아온 역사가 있었듯이 지금도 일시적 역사가 일어날 수 있지만 종국에는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하였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며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이런 대언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의 말씀을 주의 뜻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 고집과 아집과 미움과 혈기로 대언하는 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모든 불의한 일들과 악한 생각들을 서슴치 않지만 보이는 곳에선 거룩한 겉모습을 보이는 대언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외친다. 대언한다. 과연 그 말씀대로 뒤따라 일어나는 일들이 말씀대로 일어나는지, 성취되는지, 과연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원하시고 명령하신 대로 선포하는지, 아니면 자기들 뜻대로, 생각대로 마음은 콩밭에 두고 머리와 입으로만 종이에 적힌대로 달달외워 전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