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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인간은 풀과 같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작성자 revjerry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35): 모든 인간은 풀과 같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역사가 H. G. Wells는, “예수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편의상 B.C와 A.D.로 나누는데, B.C.는 Before Christ,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 (Year of the Lord, 우리 주님이 나신 해)라고 합니다. 요즘은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의식해서, B.C. 대신에 B.C.E (Before Common Era)라고 쓰기도 하더군요.

세계대통령이라는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고, 미국과 유럽의 최대명절이 성탄절과 부활절이라는 기독교의 명절이며, 예수의 대한 책이 미국대통령에 대한 책보다 더 많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예수의 위력이 상당하다 하겠습니다.

지금도 기독교는 세계최대의 종교로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에서 약 20억명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니 기독교를 빼놓고 세계종교를 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예수에 대한 찬양일색의 책들이 많이 나왔으나, 요즘에는 역사적 예수를 가능한 한 바르게 보자는 책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저도 근 50년 가까이 예수를 믿어 오면서 예수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렸을 때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믿었고 목사님들이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전해주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에 들어 가서 성서비평학을 배우면서 성서는 약 2천년 혹은 그 이상 오래된 책이라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상황, 종교문화, 초대기독교가 형성된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두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는 Geza Vermes교수의 “Christian Beginnings” (초대 기독교 역사)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Bart Ehrman교수의 “Jesus Before the Gospels” (복음서 이전의 역사적 예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바꾸고, 만들어 내었는가?”입니다.

제가 쓴 글 중에, “저는 예수의 가르침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을 좋아 하지만,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사상, 육체부활, 재림,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등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리라서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좀 혼동스럽다고 하면서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더군요.

사람들은 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으므로, 제가 설명해 준다고 해도 별로 바뀔 것은 없겠지만, 제가 위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 대충 생각나는데로 적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동정녀 탄생”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누가복음서도 있지만, 그보다 더 일찍 씌여진 바울서신과 마가복음 그리고 나중에 씌여진 요한복음에는 “동정녀 탄생”에 대한 언급조차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동정녀에서 탄생했다는 탄생설화를 믿는다면, 불교인들은 석가모니 부처가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삐져나왔으며 태어나자 마자 일곱걸음을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을 했다는 탄생설화를 믿고, 고구려를 창설했다는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설화가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는 “하느님의 아들” (천자)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일본의 천황은 태양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일본국민들에게서 신적인 존재로 존경받는다고 합니다. 옛날 로마의 황제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으며 황제가 된 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만인이 우러러 보는 황제나 종교의 교주가 “어렸을 때 기저귀에 똥싸고 오줌싸며 컸다”고 하면 폼이 나지 않기에 후세 사람들이 그럴싸한 탄생설화를 만들어 내어, “위대한 사람들은 출생부터 남달랐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 모든 탄생설화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너무 평범해서, “위대한 인물은 신의 씨앗이 인간여자의 몸을 빌어 태어났다”는 탄생설화도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신 Zeus는 인간여자인 Alcmene 와 관계를 맺어 반신반인인 괴력의 사나이 Hercules를 탄생시켰다는 설화가 있으며, 신화에 익숙한 로마와 희랍사람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예수도 신과 동정녀의 탄생으로 태어난 신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하려 했던 것이 예수 탄생설화의 유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도 하늘의 신이었던 환웅이 곰이었던 웅녀랑 관계를 맺어 태어난 단군왕검이 한국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듯이, 모든 종교나 국가가 “우리는 출발이 남달랐음”을 강조하려고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너 잘 생긴 청년을 만나 평범하게 아기 낳고 살고 싶냐 아니면 나랑 연애해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를 낳고 싶냐?”하는 양자택일의 선택권을 주었다면, 마리아는 십중팔구, “하나님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동네 총각과 만나 애기낳고 평범한 일생을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선택권을 마리아에게 주지 않고, “내가 너를 통해 아이를 낳을텐데, 그 아이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은, 요즘 말로는 일종의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하나님이 감옥에 갇힐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고 예수의 인물됨을 강조하고자 만들어낸 탄생설화라고 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나님이 삐치거나 화를 내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로 속좁은 하나님이라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예수의 대속사상은 “기독교인들을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인간”으로 만든다고 봅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자연 법칙”은 성경에도 나와 있는 진리인데, “내 죄를 위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니, 나는 이제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지은 죄는 제가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죄에 대한 벌이 무서워서라도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교통법규를 어겨서 벌금을 물게 되면, “예수께서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셨으니, 나는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고 경찰한테 말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만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고 인간이 어쩌할 수 없는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며 살다 죽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의 육체부활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 당시 존재했던 쿰란 공동체의 사해사본 기록이나 로마의 역사기록에 예수가 육체부활했다는 보도는 없으며,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예수의 정신은 영원하다.”고 믿다가, “예수의 육체도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더라도, 예수의 정신이 내 속에 부활하여 살아 있음을 믿고, 예수가 가졌던 “하나님이 다스리는 정의와 평화의 왕국”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갖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도록” 우리가 해야 할 몫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예수교인들의 사명이라 봅니다.

예수가 죽은 후 300년 동안, “예수가 누구냐? 신이냐 인간이냐?” 반신반인이냐? 신이긴 한데 진짜 신과 동격이냐 아니냐? 예수가 전적인 신이며 전적인 인간이냐?”하는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일된 로마제국을 다스리려던 황제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싸우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기독교 세력들이 싸우면 통일 로마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안되니, 하나의 통일된 신학을 마련하라”고 니케아 종교회의를 주선했다고 합니다.

A.D. 325년에 터키의 니케아에서 있었던 종교회의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동격”이라는 문구가 채택되면서 예수가 공식적으로 신격화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교회의 교리일 뿐, 예수가 진짜로 신과 동격이냐 아니냐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고, 각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예수는 인간이었다고 봅니다. 예수에게 신성이 있었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신성(Imago Dei)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예수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신으로 부터 지음받은 인간은 모두 약간의 신적인 속성(divine spark)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가 구름타고 재림하신다는 것은 “언젠가 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고, 내 개인의 죽음은 훨씬 더 빨리 닥쳐 올테니, 하루하루를 경건하게 살아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지, 실제로 예수가 구름타고 오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곧 재림할텐데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지 않고 나의 재림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고 예언하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예수도 죽었고 예수의 말씀을 들은 군중들도 다 죽었으니,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예수께서도 가끔 헛다리를 짚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천당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지옥이 있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 해도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에 적어 놓은 말을 좋아 합니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유!)

제가 죽어서 없어지더라도 괞챦습니다. 저는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은 영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히브리 시인의 노래를 좋아 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벧전 1:24-25)

2016-03-29 20:02:52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reality [ 2016-03-30 08:17:03 ]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사상, 육체부활, 재림,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등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리라서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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