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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
작성자 revjerry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36):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

두어주 전에 아내가 처남과 통화하다가 “뭐라구?”하며 깜짝 놀라는 소리를 듣고 저도 놀라 무슨 일이 일어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말로는 사촌의 아들이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는데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살기 좋다는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콘테이너 화물칸에 숨어 들어 오다가 산소부족으로 중국청년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청년이 무슨 고민이 있었길래 자살로 인생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미국에 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혼자 미국에 왔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사람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마음자세를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 Netflix에서 다큐멘타리를 하나 보았습니다. 제목은 “The Prince of Pennsylvania”였는데, 펜실베니아주의 백만장자였던 John Du Pont 의 일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나이롱(Nylon)을 계발하여 전 세계로 확산시킨 유명한 Du Pont화학 회사는 미국의 Du Pont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Du Pont가문의 상속자인 John Du Pont은 가문의 유산을 받아 백만장자였다고 합니다. John이 어렸을 때 John의 어머니는 또래의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서John과 놀도록 했다고 합니다. 돈에 파묻혀 살면서도 정작 가까운 친구가 없었던 John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승마연습을 하다가 낙마하면서 고환을 다쳤고 고환의 염증이 심해서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체치료사였던 Gale Wenk라는 여자와 결혼했으나 얼마 안가 이혼을 했으며, 그 이후로는 미국 올림픽 레스링 선수들을 후원하는 일을 하는데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John Du Pont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자기의 넓은 농장에 체육관을 짓고 올림픽 국가 대표급의 선수들의 생활비를 대어 주며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그의 후원에 힘입어 David Schultz는 세계 레슬링 챔피언과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John Du Pont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조류학에 조예가 깊어 책도 여러권 썼고 Ph.D. 학위도 얻을 정도로 학구적이었고 수영과 철인오종경기의 국가대표자리에 도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장에 93만불하던 헝가리의 오래된 우표를 살만큼 우표수집에도 열정을 보였으나, 마음은 늘 외롭고 불안했던지 술과 마약을 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싼 링컨 컨티넨탈차를 두개나 연못에 밀어 넣기도 했고, 자기 농장에 스파이가 있다며 전차를 몰고 다니기도 했으며, 많은 총기류와 무기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종종 총을 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91세로 돌아가시자, John의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이 더 심해 졌으며, 그의 변호사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지만, John은, “내 정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정신치료 받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John은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괴팍한 사람이 되었고 급기야는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이자 친구였던 David Schultz의 집에 찾아가 David를 총을 쏘아 죽이는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David Schultz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David을 죽인 John Du Pont는 백만장자였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긴 해도 정신이상은 아니니, 살인죄를 적용”하는 판결을 받고 13-30년의 형을 받고 감옥에서 72세의 나이로 급성폐렴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수천만불의 돈을 두고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해 살인을 하고 감옥의 죄수로 살다가 죽었다는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John Du Pont이 겸손하게, “내가 정신이 좀 이상해 진 것 같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 정신을 차려야 겠다”고 생각하거나,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사는 것을 중단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살아 보자”고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아내의 작은 아버지되시는 분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평생 학교의 청소나 수리를 해 주던 소사의 일을 했으며 80이 넘어서는 치매가 와서 사람도 알아 보지 못한 채 양로원에 계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 분의 담임목사님은 목회자 연장교육을 가느라 장례예배를 집례할 수 없다고 하여 가족들이 저한테 장례예배를 부탁을 해서 제가 장례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의 말에 의하면, Wayne할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남들을 도와 주는 일을 즐겨 했다”고 하여 장례식의 분위가 화기애애했습니다.

몇년전에 저는 아내의 조카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언니의 외동아들이 결혼하니 저는 설교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설교준비를 해 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를 거듭하다가 정작 설교를 할 때는 생각이 너무 복잡해 져서 죽을 쑤고 말았습니다.

설교를 하는 저의 음성이 불안하게 떨리고 말이 막히고, 얼굴이 붉어 지고, 이마에 땀이 나고 등짝이 후끈해 지면서 설교를 망치고 나니 결혼식을 마친 후 저는, “쥐구멍이 있으면 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피했습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장고끝에 악수둔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너무 잘 하려다가 긴장하여 머리가 복잡해 져서, 설교를 망친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처삼촌 벌초하는 식”으로 처삼촌 장례식의 설교를 대충 준비하여 했더니,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 져서 편안하게 설교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례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미국 아주머니 한 분이, “교회에 와서 설교 들으면서 이렇게 웃기는 참 오랫만이다.”하며 칭찬을 해 주시더군요.

언제가 함석헌 선생에게 어떤 젊은 목사가, “저는 설교 준비를 하는게 참 힘이 듭니다.”고 하니, 함석헌 선생이 그 목사에게, “자네는 설교를 준비해서 하나?”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설교는 인위적으로 준비해서 하는게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목사가 함석헌 선생에게, “저는 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합니다.”하니 함석헌 선생은 그 목사에게, “자네는 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하나?”라고 하더랍니다. 준비없이 하는 설교는 지리멸렬한 설교가 되기 쉽다는 뜻이겠지요?

설교는 너무 인위적으로 준비해서도 안되고, 너무 준비없이 무성의하게 해서도 안되니, 적당한 중용의 도리를 지키라는 어르신의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의 내노라 하는 원로 목사님이 “나는 설교 준비를 딱 20분만 한다.”고 하시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평생의 삶이 설교준비였기 때문에, 20분 동안 설교의 핵심만 준비하신다는 말씀도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세기의 신비가 Rumi는,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완전한 통역일 뿐”이라고 했답니다. (Silence is the language of God, all else is poor translation.)

“침묵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에 비하면, 인간의 설교는 불완전한 통역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라”는 지혜로운 스승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2016-04-02 22: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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