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Los Angeles
종교마당
제목 통이 큰 종교인들이 되었으면
작성자 revjerry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40): 통이 큰 종교인들이 되었으면

오늘은 쉬는 날이라 집에서 Netflix를 통해 “Escape from a Nazi Death Camp”란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독일군이 점령해 있던 폴란드의 Sobibor란 마을에 있던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 유태인 포로들이 필사의 각오로 탈출에 성공한 실화이야기 였습니다.

Sobibor 수용소에서 일년간 죽어간 유태인들은 16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1943년 가을 독일군들은 수용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태인들 6백명을 전부 죽이고 수용소를 폐쇄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보를 알게 된 유태인들은 그냥 죽기 보다 독일군 간부들을 암살하고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쟁포로로 잡혀온 유태계 소련장교의 지휘하에 유태인 수감자들은 독일군 간부들을 작업장으로 유인하여 도끼와 칼로 죽인 후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6백명 정도의 유태인들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독일군의 총과 수용소 주변에 깔아 놓은 지뢰때문에 대부분이 죽거나 잡히고 50여명의 유태인만 탈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유태인 탈출 보고를 받은 Heinlich Himler는 Sobibor 수용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서 유태인 학살의 증거를 없애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은 평범한 시골 마을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왜 기독교 국가인 독일이 유태인들을 6백만명이나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히틀러 정권이 유태인들을 학살할 때 대부분의 독일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은 나찌정권에 찬동하거나 묵인했다는 사실에 독일인들은 현재 반성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된 A.D. 70년 이후 유태인들은 나라없는 백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천육백만명의 유태인들이 있으며, 이스라엘에 610만명, 미국에 570만명, 나머지는 주로 유럽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1948년에 이스라엘이 국가로 독립하기 전까지 약 2천년 가까이 유태인들은 나라없는 백성으로 설움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유태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고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유태인들을 미워하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정서를 갖기 쉬울 것입니다. 개신교의 아버지격인 Martin Luther가 “유태인의 재산을 빼앗고 유태인들의 집에 불을 지르라”고 선동했다고 하고, 이 못된 가르침을 Hitler가 이어 받아 육백만명의 유태인들을 학살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데 왜 유태인들은 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나?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는데,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나?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메시야를 희랍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되고, 한자어로 번역하면 “기독”이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름부은 사람”은 정치지도자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가령, 종교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정치지도자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등극하는 세리모니를 행했던 것처럼, 메시야 개념은 고대 유대왕국의 “왕권신수설”, 즉, “이스라엘의 왕은 신이 보낸 왕이라는 종교와 정치가 혼합된 고대 이스라엘 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약소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으로 부터 침략과 박해를 받아 “우리도 다윗임금시대처럼 부강한 독립국가가 되어 태평성대를 누리던 때가 언제 다시 오려나?”하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동학교도들이 “부정부패와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세상이 뒤집혀서 후천개벽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위함이요”하는 말씀을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예언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믿을만한 성서학자들은 이 예언은 예수의 대속죽음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가 죽은 후 예수를 믿는 유태인들과 예수를 믿지 않는 유태인들이 서로 싸우게 되었으며, 예수를 믿던 유태인들이 기원전 700년경에 씌여진 이사야서의 이 말씀이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일 뿐,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예수는 유태인이었음이 확실합니다. 유태인의 관습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유태교 회당에 다녔다고 하며, 유태교의 최대명절인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해 죽은 유태인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설교했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도 이미 구약 레위기 19장에 있는 말씀을 요약해서 강조한 것이지, 예수님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에 관해서 씌여진 복음서는 예수가 돌아가신 후 40-65년이 지난 후인 A.D. 70년에서 A.D. 95년 경에 씌여 졌다고 하는데, 그 40-65년 동안 예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일부는 바르게 전달되었으나, 일부는 바뀌기도 하고 조작되기도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민중들의 95퍼센트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다고 하며, 아람어를 쓰던 예수의 제자들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는데, 복음서는 희랍문화에 익숙한 독자를 위해 희랍어로 씌어지는 과정에서 로고스개념이나 이원론과 같은 희랍철학적인 내용이 첨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가 돌아가신 지 300년이 되도록 “예수가 누구였던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자,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데,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분열되고 다양한 교리로서는 곤란하니, 하나의 통일된 교리를 만들어 오느라”하고 교회지도자들에게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A.D. 325년에 교황이 소집했던 Nicene 주교회의에는 1800명의 주교들중 200여명밖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 회의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 아리우스파가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주장한 알렉산드로스파에게 패배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예수는 인간인 동시에 신이며, 삼위일체중의 성자”라는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사도신경의 몸통이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나는 신이다. 나를 신으로 숭배하라.”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할 뿐”이라고 했으며, 그의 유명한 겟세마네 기도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던 하나님의 종이었지 하나님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예수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지, 예수를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것은 예수께서 바라시지 않는 일이라고 봅니다.

예수를 유태인들이 죽였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라고 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로마 황제가 파견한 빌라도 총독이 사형집행을 명령했기 때문에 빌라도와 로마군인들이 예수를 죽였지 유태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통파 유태인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유태계 기독교인들이 정통파 유태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성경에 드러나는데, 유럽에서 득세한 기독교인들이 유태인들을 2천년동안 미워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라고 봅니다.

“신앙은 영적인 상상”(Faith is spiritualized imagination.)이라고 했던 Henry Ward Beecher의 말처럼, “예수는 평화의 왕”이라고 믿고 상상하는 것은 좋으나, “예수가 인류의 메시야이니 반드시 믿어야 한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는 것은 독일의 여성신학자 Dorothee Soelle가 말했다시피, “기독교 파시즘 (Christofascism)”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님들을 무조건 응원하거나 후원하기를 꺼려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후진국에서 고생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농사기술, 태권도와 음악, 교육과 의료, 고아원, 장애인 복지사업등으로 봉사한다면 저는 전적으로 후원하고 싶습니다만, “기독교만 믿어야 한다.”는 기독교 파시즘이나 기독교 제국주의를 설파한다면 저는 반대입니다.

제가 아는 장로교 목사님은 친동생이 조계종 승려인 스님입니다. 그 형제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데, 교회에도 절에도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두 아들이 다 귀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 편을 들면 다른 한쪽이 서운해 할까봐 아예 교회에도 절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하나님도 그 어머니의 심정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하나님에게 누가 “하나님은 종교가 뭐예요? 하나님은 기독교 믿어요? 불교 믿어요? 이슬람 믿어요?”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종교가 뭐꼬? 나는 그런 거 모른다. 온 인류가 다 내 자식들인데, 부모입장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 있나? 나는 너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한다. 제발 종교때문에 싸우지 마라. 내 속 터진다.”하실질 모르겠습니다.

종교믿는 사람들이, “내 종교가 맞고, 네 종교는 틀렸다”하는 속좁은 생각은 버리고, “내 종교 네 종교를 떠나 온 인류를 한 가족으로 품어 주시는 우리 모두의 하나님을 믿고 살자.”고 통 크게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6-04-25 10:13:34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전자신문
주간운세
시민권 취득 예상문제
운전면허 예상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