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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교-어떤 배를 타시겠습니까?/5월22일주/삼위일체주/웨슬리회심주/강단백색
작성자 ame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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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어떤 배를 타야할까?
성경-사도행전 27:27-44절

오늘은 어떤 배를 타야할까?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도피성과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노아방주(창6장-8장)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시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인정받은 노아와 노아의 부인 그리고 세 아들과 세 며느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설계를 하신대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고 노아를 포함해서 노아의 가족 8명과 노아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이끌어 들인 생물 암수가 방주에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으며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사십 주야 비가 쏟아져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방주의 문은 하나님께서 닫으셨습니다. 모든 마무리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450여일이나 키, 돛대, 삿대, 노, 나침반도 없는 방주가 물위에 떠다니며 좌초하거나 파선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습니다. 방주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교회 안에서 구원이 이뤄집니다. 교회의 주인과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합니다.

2.타이타닉 호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 호는 영국의 사우스 햄프턴을 출항하며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과 승무원, 승객을 합쳐서 약 2,200명 이상이 배에 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프랑스의 쉘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스타운을 거쳐 미국의 뉴욕으로 향하다가 4월 14일 23시 40분,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로부터 남서쪽으로 640㎞ 떨어진 바다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였습니다.

타이타닉 호 침몰 희생자 수 집계는 다양하지만, 영국 상무성의 발표에 따르면 1,513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로, 생존자는 불과 711명에 불과했다. 배의 규모는 46,328톤, 길이는 268.8m, 폭은 27.7m, 최대 속도는 23노트(42.6㎞/h)로 달리는 최신형 선박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런던에서 최초의 국제 해상 안전 협정이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73년 후인 1985년 9월 1일 타이타닉호의 잔해가 해저 4,000m(북위 41°26′, 서경 50°14′)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침몰 당일 밤, 갑자기 배 앞쪽에서 거대한 빙산이 나타났습니다. 배는 엔진을 모두 가동하여 전속력으로 후진하기 시작했고 어렵게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빙산과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만 톤에 달하는 빙산이 배의 우현 쪽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배 아래쪽 측면부에 큰 구멍을 내고 말았습니다. 만약 타이타닉호가 빙산의 머리 부분과 정면으로 충돌했더라면 배의 방수 격실 두 세 개만 파손됐을 것이고, 배는 무사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빨리 침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배에는 모두 16척의 구명보트와 4척의 접는 보트가 있었지만 승객의 절반밖에 탈 수 없었습니다. 자정을 지나자 선장은 배의 운명이 약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침 10마일쯤 떨어진 곳에 캘리포니안호가 운항하고 있었지만 이 배는 무선 통신을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타닉호에서 보낸 구조 신호를 듣지 못했습니다.

배에 승선한 2,200명 중에는 현재의 화폐 가치로 55,000달러 이상의 많은 요금을 내고 일등실에 탄 세계의 거부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최저 요금의 하층 객실에는 700명의 이민자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최저 요금 객실에 있던 승객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갑판 아래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결과 배에 탔던 여성 중 1등실 여성 승객은 97%가 생존했지만 2등실은 84%, 3등실은 55%만 생존하였습니다.

해저 4,000m에서 인양한 유물 중에는 해양 박물관에 전시해도 될 만한 귀중한 공예품도 많았습니다. 특히 여우 머리 장식핀(14k 금과 유리로 제작), 74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백금 펜던트, 1~2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백금 반지 등의 보석품은 일등실 승객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석 이외에도 향수병, 3등석의 식기 그리고 정부와 함께 승선했던 남자의 보험금 영수증, 이름 없는 승객들의 신발, 가방, 모자 등 약 5,500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슴니다. 이들 모두는 지금 보물이 되어 있습니다.
자료출처 [네이버] 타이타닉 호 - 얼음 바다가 삼켜 버린 배 (대단한 바다여행, 2009. 12. 1., 푸른길)

3.세월 호
2014년 4월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침몰한 사건입니다.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 고 학생을 비롯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295명이 사망했습니다. 수습 과정에서 정부는 우왕좌왕했고 한국 사회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에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습니다.

세월 호를 버렸던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은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세월 호 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라는 기독교의 이단단체도 뉴스에 오르내렸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을 앞둔 국가에서 일어난 후진국형 사고였습니다. 원칙을 무시했던 한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업계 유착과 비리 원인으로 지적된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에 정부는 진땀을 흘렸습니다. 2014년 11월11일 수색이 종료됐지만 9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세월호 참사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

4.이순신 장군이 탄 배
난중일기의 명량해전에 관련된 기록입니다. 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맑음. 이른 아침 정찰병이 달려와 무려 200여척이나 되는 적선이 울돌목을 향해 곧장 진격중이라고 보고했다. 각 배의 장수들을 불러 미리 정해준 군령대로 움직일 것을 다시 한 번 신신당부하고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갔다. 삽시간에 적선 133척이 내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대장선에
몰려드는 적선들과 마주했다. 그리고 포탄과 화살을 퍼 부었다. 화살 날아가는 소리에 바람이 일었고 대포소리에 하늘이 울렸다. 그런데 아군의 다른 배들은 멀찌 감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한 놈들이다 즉, 명량해전 초기에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혼자 적 함대와 전투를 한 것은 실제 난중일기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며, 실제로 울돌목의 좁고 물살이 빠른 조건은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난중일기를 계속 읽어 드리겠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몰려오는 왜적에 맞섰다. 그런데 장졸들은 낯빛을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 걱정 말거라. 저놈들의 배가 만약 천척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포와 화살을 날려 적들을 꺾어버려라. "한참을 싸우다 돌아보니 아군의 배들은 이미 5~10여리 뒤로 물러나 있고 우수사 김억추의 배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군율을 엄중히 세우기 위해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한 중군 김웅성을 잡아다가 목을 치려했을 정도로 제장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아 ~ 아군의 배들은 점점 멀어지고 적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속수무책으로 적들에게 둘러 쌓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황급히 영하기와 초요기를 올렸다. 그제서야 김응성과 안위의 배가 다가왔다. 나는 뱃전에서 건너편에 있는 안위에게 소리쳤다.“너 정말 죽고 싶냐 이놈아 ” 화가 풀리지 않아 다시 한 번 소리쳤다. “ 야 이놈아 너 혼자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안위는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힘차게 노를 저어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적장의 배와 다른 적선 두 척이 안위의 배에 부딪히더니 개미떼처럼 안위의 배로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노 젓는 격 꾼 7~8명이 물로 떨어졌는데 그들을 구해주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웠다. 안위를 구하기 위해서 배를 돌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들어갔다.

우리 측에서 쏘아대는 화살이 비처럼 적군들의 머리위에 쏟아져 내리고 안위 배에 타고 있는 수군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맹렬하게 싸웠다. 견디다 못한 적선 두 척이 울돌목 회오리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렀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왜적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12척이 힘을 합하여 울돌목으로 들어오고 있는 적선 삼십 척을 깨 부셨다. 적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울음바다 명량에서의 오늘 전쟁이 끝났다. 우리는 우수영으로 물러났으나 썰물로 인해서 배를 댈 수 가 없어 건너편으로 이동했다가 열엿새 달빛에 젖은 바다를 달려 암태도 옆에 있는 당사도로 가서 우리 모두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밤을 맞았다[출처 네이버, 난중일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적선을 침몰 시켰습니다.

5.바울이 탄 배(사도행전27장)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자신을 변론하며 베스도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미쳤다는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이 바울이 사형이나 옥에 갇힐만한 죄가 아니라며 석방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로마황제에게 상소를 했기 때문에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시돈에서 출발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바울 사도와 백부장율리오와 로마 군병들과 로마로 압송 되는 죄수들과 선원들이 탄 배가 미항에 이르러 바울 사도가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와 우리의 생명이 위태하다고 말했지만 백부장이 경험이 많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부니 선장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는데 갑자기 유라굴로 라는 광풍이 여러 날 불어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을 때 바울 사도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어제 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로마 황제 앞에 서야하며 하나님께서 배에 탄 사람들을 다 네게 주셨다 하셨으니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태풍이 불기 시작한지 14일째 되는 날 밤에 배가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가다가 14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며 배에 탄 276명 모두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상하지 않으리라고 안심을 시키고 축사 후에 떡을 떼어 먹었습니다. 276명이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영적으로 성찬을 행한 것입니다.

14일 간 배의 짐과 기구와 밀을 다 버리고 배와 사람만 남았는데 로마 군병들이 죄수들을 다 죽이자고 했으나 백부장이 바울 사도를 살리려고 군사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명 받은 자에겐 도울 자를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십니다. 배는 결국 파선되고 사람들만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6.요한 웨슬리가 탄 배
존 웨슬리는 그의 끝없이 타오르는 종교적 정열로 완고한 영국교회(성공회)의 안일주의와 의식에 치중한 생활을 박차고 믿음의 요람인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직을 사직하고 북아메리카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전도 단은 1735년 10월 18일 시몬주호를 탔는데 이 배에는 [모라비아]인들과 80명의 영국이민들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 대륙에 도착하기까진 8주나 걸렸는데 이 항해는 웨슬리에 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특히 선객들 중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제를 통해 그들의 굳건한 신앙과 용감한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항해도중 여러 차례의 풍랑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웨슬리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모라비안]교인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이 태연했습니다. 폭풍이 지난 후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교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만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 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웨슬리는 그의 일기장에 [나의 일생 중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영광은 웨슬리가 구원의 빛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가 일생 처음으로 그 구원의 빛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1736년 2월 6일. 웨슬리 일행이 탄 배를 조지아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도착하자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이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깨달아 [모라비아]교 목사 [스팽겐베르크]에게 신앙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웨슬리는 조지아에 도착한 후 모리비아교단의 [스팽겐베르크]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신앙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선생,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이 물음에 웨슬리는 무슨 말로 대답할지 몰라 주저하였습니다. 이때 [스팽 겐베르크]목사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웨슬리가 많이 들어 본 것이었습니다. 웨슬리는 대답했습니다. [네. 그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팽겐베르크]목사의 [당신은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말에 웨슬리는 [나는 ...알죠]라며 입속에서 겨우 웅얼웅얼 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영적생활의 실태를 이렇듯이 심각한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문답이야말로 그의 항해 중 얻은 최대의 수확이었습니다. [스팽겐베르크] 목사와 대화하면서 웨슬리의 마음속에는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리는 중생의 기쁨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날 그는 영국 런던 시 [올더스게이트]가의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한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한 낭독자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웨슬리의 마음엔 동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이 상스럽게도 나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중생의 경험은 웨슬리의 성격과 전도방법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엄격한 의식주의 자였던 존 웨슬리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전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웨슬리의 생애 참고]

7.요나가 탄 배(요나서)
요나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칠 때 배가 뒤집힐 뻔했습니다. 요나가 회개 하며 선장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해서 바다에 던졌더니 바다의 풍랑이 잔잔해 졌고 큰 물고가가 나타나 요나를 출발 지점인 [욥바] 해변에 토해내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에 복음을 전해 왕과 백성들이 회개해서 12만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명 자가 사명을 저버리면 배가 위태합니다.

8.예수님께서 타신 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데 풍랑이 일어나 배가 침몰할 지경에 이르러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니 파도와 바다가 잔잔해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로 가셔서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나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세상풍파가 잠잠해집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교회와 기업과 학교와 가정은 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어떤 배를 타시겠습니까?!

*서울 제자 감리 교회 담임 목사 박 영 규
*제자교회 병설 한국 위안부소녀 기념교회 목사

2016-05-20 2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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