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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의, 정체성 그리고 확신
작성자 bibliatell

하나님의 공의(JUSTICE), 우리의 정체성(IDENTITY)
그리고 나의 확신( CONVICTION) 에 대한 단상


우리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읽다보면 반복적으로 흐르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 죄, 심판, 용서 그리고 사랑이다. 이 다섯 가지가 반복된다. 물론 더 커다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도 있고 구약과 신약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있으며 율법과 은혜라는 구원의 대조적 수단도 있다. 경륜에 따른 세대적 나눔도 보여 준다. 이 외에도 우리가 결론지을 수 있는 수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2장부터 하나님의 공의가 등장한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따 먹고 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여기까지가 끝이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이 땅에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했으며 번성케 했다.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최초의 살인이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일어난다. 물론 창세기 3장에서 이미 4000년 뒤에 일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탄에 대한 승리도 예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은 죄를 저지른 가인이 저주를 받고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끝이라면 가인은 하나님의 공의와 저주의 심판을 받고 도망하며 방랑하는 자가 되어 그가 두려워한 대로 어떤 이름모를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가인에게 표를 주어 아무도 그를 찾아 죽이지 못하게 하셨고 결혼까지 하여 그의 족보를 이어간다.

이를 통해 아담이 셋이라는 아들을 다시 낳아 족보를 이어가기 전에 이미 아담의 장자 가인의 후예들이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논쟁이 많은 6장에 오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이견이 지금도 간극 이론 만큼이나 분분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고 노아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등장하지만 죄를 짓는 인간들과 이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에 대한 홍수의 심판을 보여 주며,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인간의 멸절로 끝나지 않는다. 노아 부부와 그의 세아들들과 아내들을 합쳐 도합 8명을 살려두시고 그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영구히 맺는 언약의 증표인 무지게를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다시는 물들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나타내는 순간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 인간의 새로운 번성과 역사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명멸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죄가 없는 자가 없었고 의로운 자가 없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야곱, 요셉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 다윗, 솔로몬과 같은 왕들, 신약에 나오는 베드로, 바울등 어느 한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그들의 의란 한낮 누더기에 불과했다.
여기까지가 끝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속절없이 죽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이들을 다시 받아 주시고 다시 세우시고, 끝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꾼으로 만드신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아내를 누이로 팔아 양식을 얻으려 했던 아브라함. 장자권을 뺏기 위해 아버지를 속인 야곱,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한 모세, 자기 신하의 아내를 취한 뒤 고의적으로 신하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자기 아내로 삼은 다윗, 이방 신들을 섬겼던 솔로몬과 이스라엘의 왕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 혈기등등 했던 바울,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

열거하기가 힘들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죄들이 떠오르고, 그 죄질도 끔찍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있었기에 살아남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우리의 정체성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며 실천하는 신약교회와 신약교도에 있다고 믿는다.침례교회와 침례교도라는 표현도 좋지만 신약교회와 신약교도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와, 교단과, 종파와 신약교회들 중에 침례교회의 가르침과 믿음과 실천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신약교리와 실천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침례교회를 선택했고 침례교도가 된 것에 대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에 따른 성경, 교회, 가정, 순종, 믿음, 구원, 성별, 예배, 교리, 순결등 수많은 것들에 대한 확신(conviction)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확신한 대로 온전히 지키진 못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확신만은 분명히 갖고 있다.

침례교 안에도 50개 가까운 종파(sect)들이 있지만 이러한 정체성과 확신들이 무너지고 있다. 침례교회와 침례교도라는 정체성과 확신 속으로, 세대주의 신학이라는 바탕 속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한 신약침례교회의 역사 속으로 신복음주의, 칼빈주의, 은사주의, CCM(현대 교회음악), CCW(현대 교회예배),종교개혁으로 인한 개혁신학과 개혁신앙, 개신교회적 침례교 역사관등 수많은 것들이 침투하고 있다. 자세한 사례들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와 근본주의 독립침례교도라는 정체성과 확신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확신만으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만으론 인간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질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과 확신만으론 사람들을 세울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과 확신을 바탕으로 한 용서와 사랑이 함께해야 한다. 정체성과 확신까지만이라면 모든 것이 정죄로 끝난다.

회개가 빠졌다고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회개는 그 안에 녹아 있으니 발견하기 바란다.

“너희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요한복음8:7절.



2017-03-21 17: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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