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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일조에 대하여 (1부)
작성자 bibliatell

십일조에 대한 나의 믿음과 성경적 고찰


1부 (인간의 번성과 십일조)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십일조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가르치든 상관없이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재물로 표현되는 돈은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늘 우리들 머리 속에 있고, 마음 속에 있고,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재물이 얼마나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는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재물에 관해 성경 전체에 흐르는 내용은 아주 깊고 방대하다. 우리가 좀 더 깊고 세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이미 성경의 첫 번 째 책인 창세기 1장부터 재물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고 나는 본다.

창세기1장에서부터 사용하신 복, 다산, 번성, 지배, 채움, 정복, 줌, 먹을 것, 이런 표현들은 오늘날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와 재산, 이득과 손해, 약탈과 수탈, 지배와 정복, 독식과 나눔, 강자와 약자라는 현실에 대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2장에서 제정하신 안식일은 일곱째 날을 말하는데 거룩히 구별한 날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6일간 열심히 일하고 하루를 쉬며 그동안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공급하신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거룩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모든 일에서 떠나 하루를 쉬며 또 시작되는 6일을 준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 동산에 두시지만, 아름다움, 먹음직한 나무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금, 델리움, 줄마노, 마음대로 먹음, 먹어서는 않되는 나무의 열매, 죽음등이 등장하므로, 이미 보석에 대한 귀중함과, 마음대로 먹는다라는 욕구를 주시고, 그 욕구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두어 재물에 대한 욕구를 다스려야만 하는 고통을 주신다.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도 이와같은 고통이 따르는데 한 사람을 더 만들어 두 사람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 보좌에서 수종들던 천사장 중에 하나가 타락하여 이 땅으로 쫒겨났고 사탄이 되어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먹는 것으로 말이다. 내 배를 채운다는 일은 재물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나누기를 몹시 싫어하는 인간 본연의 내재된 성품으로 진화한다. 이를 잘 간파한 사탄의 계략에 인간은 그대로 걸려들고 만다.

어느 한 장소에 1000가지의 다른 과실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한 가지만 빼고 다 먹으라고 했다. 그 하나엔 먹으면 죽는 독이 가득 담겨 있으니 제발 먹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재물에 대한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심정으로 그것마저 먹고 죽었다.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먹고 보아야 한다는 인간의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오늘날 대대손손 별의별 분탕질을 다 해가며 먹고 살아도 쓰지 못하고 죽을 재물이 쌓여 있어도 남이 가진 마지막 하나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뭔가 허전한 마을을 달랠길 없는 인간의 속성을 말해 준다.

구약성경 중 이스라엘의 아합이라는 왕이 등장하는데, 궁궐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좋은 포도원을 하나 갖고 있었다. 그 포도원이 탐난 왕은 나봇에게 더 좋은 포도원을 줄테니 자기에게 달라고 하지만 나봇이 거부하자 왕이 근심하며 몸져 눕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이 이러한 사연을 듣고 왕을 모독한 죄명을 씌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왕이라면 기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일텐데도 백성의 포도원을 뺏기 위해 백성을 죽이고 취하고 마는 인간의 속성말이다.

신약성경에는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갚지 못한 것에 대한 엄청나게 커다란 용서를 받고 나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이라는 아주 아주 적게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감옥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도 인간의 속성을 잘 말해 준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러한 속성을 잘 제어하는 개인이 많은 국가는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했고 제어하지 못하고 욕심대로 몇 놈이 독식하여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는 독재국가 아니면 후진국가로 전락하여 허덕이고 있다.

3장에 가면 인간은 쫒겨나고 여자는 고통 중에 자식을 낳아야 하며 남자는 평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어야 했다.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를 열열히 사랑해야 했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다스려야만 했다.

고통 중에 낳은 자식에 대한 열망이 살아 움직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평생 고통 중에 땀흘려 일해 얻는 재물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아들이 태어나 네 사람으로 불어난다. 가인은 첫쨰 아들로 땅을 가는 자였고 아벨은 둘째 아들로 양을 지키는 자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누구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내용이 없고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갈고 지키는 청지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최초의 살인이 네 사람 사이에서 그것도 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제사를 통한 드림, 아니면 헌물을 통한 나눔도 보게 된다. 믿음이라는 것을 떠나 단순한 생각으로 살인의 발단을 보면 가인은 소출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땅의 열매 중에서 가져 왔고 아벨은 양을 지키는 자였으므로 당연히 양과 기름을 가져 왔다. 얼마나 가져 왔는지 모른다. 이땐 십일조의 개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헌물에 관심을 보이시고 가인의 것엔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번제로 동물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피의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이 없어 획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추하여 하나님께선 땅의 열매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도 아들들에게 동물을 드리라고 가르쳤을 것이라 한다.

속 사정이야 어떻든 관심을 뺴앗긴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는데, 이 또한 단순한 이유로 보면 내가 가진 재물이 동생이 가진 재물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차가, 집이, 가구가 남의 것 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빼앗아야 하며 급기야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다.

1부 끝

2017-03-21 17: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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