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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일조에 대하여 (2부)
작성자 bibliatell

2부 (인간의 타락과 십일조)

인간의 수명이 그땐 보통 800-900년을 넘었다. 아담과 이브는 물론 그들의 장자인 가인과 둘 째 아들 아벨의 죽음 이후 주신 셋이 태어나면서부터 인구가 급격히 불어난다.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난 것이BC2348년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무두셀라였는데 969년을 살았으며 BC2348년, 다시 말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같은 해에 죽었다. 무두셀라의 아들인 라멕은 777년을 살았고 아버지인 무두셀라보다 먼저 죽었다.

라멕은 우리가 잘 아는 노아의 아버지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살아남은 자들이 노아 부부와 그의 세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합하여 총8명이었다. 성경상으로 볼 때 노아에겐 분명 형제자매가 있었다. 왜냐하면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777년을 살며 아들딸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막상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 명단에는 없다. 그들도 사악한 무리들에 속하여 홍수의 심판을 받았다는 말이다.

드디어 문제의 6장에 이른다. 성경은 사람들이 불어나 지면에 번성하고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고 했는데 아들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고 아들들이 실제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기 어렵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는다. 이미 남자들과 여자들이, 즉 아들들과 딸들이 결혼하여 아들 딸들을 낳았으니 지면에 사람들이 번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이전에 믿지않는 사람들이 늘 문제를 삼는 사건 내지는 내용이 있다. 창세기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다음과 같은 벌을 내리신다,

“네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라.” 그러자 가인이 하나님께 대답한다,

“내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이런 까닭에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로 보복을 받으리라, 하시고 주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사 아무도 그를 찾아 죽이지 못하게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 부부와 두 아들 가인과 아벨만이 존재했다고 믿는 이 때에 왠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여 가인을 죽이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들을 자세히 살피면 모두 미래형으로 말한다. 그리고 “가인이 주 앞을 떠나 나가서 에덴의 놋 땅에 거하더라” 한 시점이 사실상 얼마나 시간이 흐른 시점인지 모르고, 성경은 아담과 이브가 낳은 딸들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데, 성경은 아들 중심으로 말하고 있으며 딸들은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때는 어쩔 수 없이 근친결혼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인이 놋 땅에 거한 뒤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시점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택한 사람의 딸들을 모두 아내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다투지 않을 이유는 사람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하셨고 그렇지만 그 육체는 수명이 120년이 되리라 하셨다. 800-900년 정도를 살던 사람의 수명이 이 때 120년으로 줄어든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천사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던 사람들인가? 문맥상으로 볼 때 천사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했기 때문에 거인들이 나왔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결혼이 이루어질 때 이미 땅에는 거인들이 존재했다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들의 결혼으로 인해 거인들이 태어났다고 하지 않고 오직 강력하고 명성있는 자들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는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면 이 또한 문제의 여지가 많은데 그 이유는 곧 바로 이어서 주께서 사람 만드신 것을 슬퍼하시며 근심하시고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것 때문이다. 6장4절과 5절 사이의 간격이 시간상으로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천년 이상의 간격을 보이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훗날 사악한 자들로 변모했으리라는 것도 추측할 순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천사들이었다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어치피 타락한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고 이 땅으로 쫒겨나 그를 추종한 다른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사람들을 파괴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추측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한편 아담과 이브도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뒤로 땅을 갈았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사람들이 멸절되고 살아남은 노아가 한 일도 농부가 되는 일이었고 포도원을 세웠다.

노아의 세 아들로 인해 이 땅에 또 다시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며 족속들이 형성되고 민족들이 형성된다. 서로 다른 언어들이 형성되고 민족들이 나뉜다. 바벨탑 사건으로 합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흩으신다. 드디어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으로 그 가문을 통해 아브라함이 태어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조카인 롯과 함께 식솔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쿠웨이트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다.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상속받고 롯은 요단강 건너 편에 있는 평야지대 소돔 땅에 거한다.

어느날 요단강 건너 편과 가나안 지역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부족들 간의 싸움으로 소돔과 고모라 왕이 패하여 달아나고 소돔에 거하던 롯도 잡히고 그의 재산도 빼앗긴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훈련된 종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치고 모든 재물을 되찾아 오고 롯 뿐만 아니라 여인들과 잡혀간 사람들도 되찾아 온다.

빼앗긴 사람들과 재물들을 되찾아 돌아올 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맞이했고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찬송드리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분의 일을 준다.

이 때에 참으로 많은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다. 살렘 왕, 멜기세덱,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빵과 포도즙, 하나님을 찬송 그리고 십분의 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타나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살렘 왕 멜기세덱.

살렘 왕이라는 것도 그렇고, 멜기세덱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빵과 포도즙을 들고 나온 것고 그렇고, 처음 등장하는 제사장이라는 것도 그렇고, 찬송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십분의 일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 부분을 통해 오늘날, 십일조의 기원, 십일조는 율법이 오기 400년 전의 일이나 모형,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 몸과 피의 모형, 예배의 모형, 찬송의 유래등 많은 유래와 모형들을 찾는다.

그리고 이 부분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 4번의 제단을 쌓았는데 2 번째 제단에 해당하는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제단을 쌓는 믿음이었고 두 번째 제단은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이었고 세 번째 제단은 주를 완전히 믿는 믿음이었고 마지막인 네 번째 제단은 모든 것을 드리는, 다시 말해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는 믿음이었다. 이런 믿음들을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의 점진적 믿음을 볼 수 있고 갈수록 믿음이 커지며 완전해 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리자, 소돔왕이 너무 고마워 아브라함에게 사람들은 내게 주고 재물은 네가 취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자.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가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주께 내 손을 들어 맹세하였노니 이것은 네가 이르기를,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 할까 염려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다만 청년들이 먹은 것과 나와 함께 간 사람들 곧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은 예외이니 그들이 자기 몫을 취할 것이니라, 하니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자기가 가진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 이 장면을 자세히 살펴 보면 빼앗긴 사람들과 재물들을 되찾아 온 중에서 드린 것인지, 혹 전리품 중에서 드린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갖고있는 중에서 드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도로 빼앗아 올 때, 말하자면 되찾아 올 때, 소위 말해 전리품들을 갖고 왔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7장4절을 보면, “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도로 빼앗아온 것 외에 전리품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자기 것은 아니었지만 조카 롯을 포함하여 롯이 살고 있는 소돔 땅의 백성들과 그들이 빼앗긴 재물들을 다시 찾아 왔고 그들에게 속한 것은 그대로 다 돌려 주었다. 그리고 추가로 빼앗아 온 노획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이다.

멜기세덱이 누구이며 멜기세덱과 십일조의 연관성이 히브리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히브리서6장20절을 보자,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토록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7장은 멜기세덱과 십일조의 연관성을 세밀하게 보여 주는 장이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 깊이 생각해 보라. 심지어 족장 아브라함도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멜기세덱, 아브라함, 야곱, 레위,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십일조와의 연관성은 후편에서 다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이 일이 발생한 이후부터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계속되고 늦은 나이에 자식도 주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더욱 커지며 하나님을 굳게 믿고 신뢰하며 순종하는데까지 나아가며 마지막 제단을 쌓는 단계에선 그가 가진 아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서 목숨처럼 귀중한 것을 산제물로 드릴 수있는 완전한 믿음의 단계로 나아간다.

한편,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에게 준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취하시며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훈련시키신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이 하늘의 것들을 보게 하시며 그것들을 소망하게 하신다.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란 것을 알게 하신다.

2부 끝

2017-03-21 17: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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