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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구원관에 대한 단상(2편)
작성자 bibliatell

올바른 구원관에 대한 단상 (2편)

하나님께서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보내시기 전에 내시의 객관적 상태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상태가 확실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이사야서에 예언된 그분이 누군지 몰라 상당히 궁금할 뿐만 아니라 애를 태우는 상태였다. 즉 언제든지 누군가 알려주기만 하면 그분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누군가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모르는 것들과 궁금한 것들을 알려주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해 주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경건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회개와 믿음과 영접을 강조한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시고 3일 후에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라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다.

이 죄는 우리가 타고난 죄성으로 원죄를 의미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는 하나님과 인간이 영적으로 분리되도록 만들었으며 이것을 하나님과 인간의 영적 분리 즉 영적 사망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 죄에 대한 인식과 이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내가 죄인이라는 인식과 이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엔 이 죄를 없앨 수 있는 구속사역을하나님께선 창세 전에 이미 준비하고 계셨고 궁극적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 보내시는 방법을 택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대속의 죽음을 믿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지만 3일 후에 사망을 이기시고 육신적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육신적 부활의 소망을 갖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누구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과 내가 영적으로 분리된 영적 사망으로부터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과 나의 화목이라 부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화목제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받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을 치신다. 그리고 구원을 받으면 우리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죄들, 과거에 지은 죄들, 지금 짓는 죄들, 앞으로 지을 죄들까지도 도말하여 주시고 그 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죄의 전가라고 부른다. 죄와 죄들이 다른데, 죄는 원죄(죄성)를 말하는 것이고 죄들은 우리가 살면서 짓는 죄들이다.

죄들에 대한 회개와 용서는 죄와 혼동하지 않는 한, 우리가 받은 구원과 혼동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한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 없지만 하나님께선 구원받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죄들과 잘못을 다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마치 나의 자식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내게 와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어린 아이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참으로 피곤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 세강에 살면서 짓는 죄들의 댓가는 하나님의 용서완 상관없이 치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관 상관없이 도로교통법을 어기면 벌금 내고 사람을 죽이면 감옥가고 사형당하는 것이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보시는 것은 구원받은 후에라도 아무리 우리가 더럽고 누추하고 벌레같은 짓을 한다 할지라도 흰눈처럼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운 자로 보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Justification)라 부른다.

진정 구원받은 자들은 그들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동일한 죄들을 계속 지을 수 없고, 구원받은 다윗이 죄들을 지었을 때 바로 자복하고 돌아와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처럼 계속적으로 죄들 가운데 머무를 수 없다고 확신한다.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하신다. 만약 자복하고 돌아오지 않고 계속적으로 범죄한다면 육신을 치실 수도 있고 일찍 하늘나라로 데려가실 수도 있다고 믿는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시간들은 길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Sanctification) 또는 성화과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영화(Glorification)는 우리가 죽지 않고 들림 받을 때 영원히 썩지 않을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 받을 때 이루어 진다.

지금까지 말한 핵심적 구절들을 성경 요소요소에서 뺀 무리들이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기 위함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안개처럼 희미한 가운데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하여 자기들의 뱃속들을 채우기 위함이다.

하나님에 대한 회개가 있었고 경건함이 있던 에디오피아 내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말하자면 성령의 인도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구원받는 장면과, 구원받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구원과 믿음을 나타내는 침례까지 순종하는 장면이 얼마나 단순명료한가?

침례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례와 무엇이 다른가? 마지막 3편에서 알려 드립니다.

2017-06-29 12:31:55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bibliatell [ 2017-07-03 21:25:34 ] 

도움이 되신다니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1   rainbows79 [ 2017-06-30 21:34:21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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