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한국일보

오피니언
Los Angeles
커뮤니티
 
종교마당
제목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요6장)
작성자 zenilvana

아래의 글은 내가 교회 다닐 적인 2007년 2월 17일에 내 구역의 신도들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던 자료임을 밝힌다. 읽어보면 알 분은 아시겠지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정통성이랄까 아니면, 신교의 신학교와 목사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피력한 것이고, 이는 내가 이해한, 나 나름의 신앙고백에 해당한다.

----------------------------------

지난번 1과에서 공부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과 일맥 상통하는 경이적 자연 현상을 다룬 예수님의 또하나의 교훈이다. 이러한 기적이란 것들은 우리가 직접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일어 났었는가? 성경에서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사건을 계속 얘기 하고 있다. 무조건 믿으라 하니, 믿는다고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의심의 그늘이 도살이고 있다. 혹시 이런 의구심을 남에게 밝히게 되면, 신앙이 없다고 빈축을 살까봐 덮어 놓고 성경 공부를 하여왔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다.

1. 기적에 대한 의심

이 공과책 전체가 “예수님의 기적”을 12월 까지 공부하게 되어 있는데, 위에서 제기한 의심의 문제를 어느 정도 집고 넘어가야 남어지 공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번 1 과에서도 그랬고 또 이번 2 과에서도, 어떻게 보면 본질적이랄 수 있는 것을 너무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이 저자는 “작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 하라” 든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기적이 가능하고, 또 그를 믿음으로서 풍성한 기적이 지금도 가능하다” 는, 일단 믿었다는 것을 전제 하고 이 2 과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접근하기 보다는 왜 기적의 얘기가 필요하며, 이로서 무엇을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르치려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저 한다.

2. 기적의 시대적 배경

교리상으로 기독교에서는 기적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공식화 되기 까지는 수천년 동안에 많은 철학자 사상가 종교 지도자들 간에 끝없는 논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 께서 사시던 시대는 오늘날 미국의 소비자 문화가 세계를 휩쓰는 것 처럼 “헬레니즘”이란 문화가 왕성하던 시절이었다. 기원 전 65 년경 로마의 “씨저”는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 전 300년경에 동쪽으로 부터 인도, 페르샤,에집트 등을 정복한 대영토를 이어 받아 그 동안 오래도록 페쇄돼 왔던 고대의 동-서 문명을 통일한 새로운 기원의 문화 시대 를 열었다. 이 300년 동안에 있었던 격변의 시대에 전에 없었던 많은 문물이 동-서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사상이 예수님의 “팔레스타인” 땅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보통 사람” 들은 경제적 밎 정신적 피해를 당하는 과장에서 여러 정신 병자와 실향민들을 배출했으며, 로마의 “노예경제 체제” 아래 착취 당하는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성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약육 강식”하는 시대적 요구와 이에 살아 남아야 하는 정신 무장을 위하여는 이 새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종교적 이념이 필요하게 됐으며, 이런 상황 아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다.

3. 기적의 필요성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자연 현상을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리적으로 여행하기 어려운 때라 자연히 자기들의 좁은 생활 공간의 범위 내에서 생긴 우주 만물의 생성을 설명해야 했고, 그로써 생각의 채제 즉 사상 혹은 종교개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크게 나누어, 동양에서는 중국의 노-장사상, 공자의 유교, 인도의 힌두교, 이스람교 또는 불교를 생각할 수 있다. 다음, 중근동에서는 “페르샤”의 “조로아스타니즘의 천사 밎 선악의 이중개념”, 유태인들의 “유일신과 선민사상”, 에집트의 “죽음후 영생”의 개념들이다. 그리고, 서양의 문턱에 위치한 희랍의 “논리적 철학” 밎 “제우스신 종교”, 로마에서의 “잡다한 신의 개념, 스토익 철학의 엄격한 논리”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사상들이 정치적 군사적 물결에 따라 유태인들의 사고방식에 스며 들었는데, 이로서 유태교 그리고 기독교가 탄생되었다. 여기서 특기해야 할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던 당시에는 위에 말한 많은 사상들을 포괄하는 “Gnosticism” (그노씨즘)”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신봉되었다. 기원 후 300년경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고 “그노시즘”을 사교로 이단화하기 까지는 초창기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행사했다. <참고 1>

4. 기적의 사실성 논난

로마의 시세로 (Cicero: BC102-46, 씨저가 공화체제를 황제정치로 바꿀 당시)는 “원인 없는 결과없고, 이로서 발생할 수 없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결국 일어 날 것이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적은 없다. (”Nothing happens without a cause, and nothing happens unless it can happen. When that which can happen does in fact happen, it cannot be considered a miracle. Hence, there is no miracle.). 금세기의 신약 학자로 자주 들먹이는 “불트만” (Rudolf Bultmann: 1884-1976, Germany)은 정통적인 신비주의적 개념을 배제하고 윤리와 종교적 성향의 자기 탈바꿈으로 해석했다. 또다른 유명한 신학자 “칼 발트” (Karl Barth: 1886-1968, Swiss)는 “꽌탐” 이론의 “워너 하이젠버그”(Werner Heisenberg: 1901-1976, Germany)의 “불확실성의 이론”에 따라 원인 결과의 구속성에 관계없는 신성의 정신적 차원에서 기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참고 3>

또 2 세기에는 “아리우스”(Arius: AD 250-336)라는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밎 신부와, “아타나시우스”란 그곳의 대주교 (Athanasius, Saint AD 293-373, Alexandria)와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라는 그의 신성의 문제로 수십 년간 엎치락 뒤치락 살인 방화 반란 유배 끝에 “콘스탄틴 대제”의 주재하에 결국 지금 우리가 매주 외우는 “사도신경”을 AD 324년에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로 “니케아”에서 현재의 신-구약이 경전화(Canonized)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지금 성경으로 부르는 신-구약이 확정 됐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삼위일체성”을 의심해서는 이단으로 단죄 받았고, 사회에서 매장돼 오기를 16세기까지 끌어 왔다. 1500년경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량으로 출판하며 “보통사람”도 카토릭 교회의 눈치볼 필요없이 성경을 읽을 수 되었다. 이로서 '카토릭'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독점하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며, 역사가는 이 시대를 “암흑시대”라 부른다.

5. 기적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이 12 제자의 작은 무리를 데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정신적 혼란에 빠진 여러 사회에서 버려진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길로 인도하는 데에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다. 옛날 생각으로 쩔어 있는 무지한 그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자타가 공인하는 불가사이한 일을 보여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하바드”나 “프린스톤”대학의 교수라는 타이틀이나 이에 상응하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으로 여러분들이 나를 안다면,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이런 내용을 무게 있는 사실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신뢰성이란 이와 같이 남의 생각을 곶이 곧대로 받아 드리게 하는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 무지막지한 "보통사람들”을 설득하는데에는 기적이 이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신약의 필자들은 비로소 왜 예수님의 기적의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며, 이 기적의 위력을 통하지 않고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구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던 것이다. 요한복음 뒷장에서 “증표” (즉 기적)을 찾지 말고 자기의 말 (로고스)을 믿으라고 계속 강조하고 계신 것으로 볼때, 기적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음을 짐작하는 것이다.

6. 현재의 나의 입장

“五餠二漁(오병이어)”가 정말 사실이었는가 아니냐, 또는 그것이 가능하냐 아니냐하는 사실적 기적의 논난은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빵 다섯개와 생선 두마리로 시작된 나의 신앙이 이 처럼 많은 무리를 먹인 훌륭한 결과와 같이 나 자신의 풍성한 영적 체험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 얘기에 숨겨져 있는 사실이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이 때에 인류 정신 유산의 최첨단의 사상인 “콴탐”의 이론대로 나는 이 우주 만물과 정신 세계가 나의 뜻하는 바 대로 현실화한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어떠 어떠한 조건이 꼭 맞아야 행복하다는 생각에 갇혀있다. 그리고 이 조건을 갇추기 위하여 엄청난 희생과 불행을 감내하며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살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외부조건도 결코 우리의 끝없는 욕구를 만족 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눈 앞의 세계는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나의 내면에는 또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깨달았을 때에는 어떠한 외부조건에도 관계없이 행복한 세계 즉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를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바로 이 세계를 우리에게 가르치려 했다고 믿고, 내가 그의 안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세상적인 가치관의 사람에서 정신적 새 사람이 되는 그런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칼 발트”의 견해와 같이 한다. “부르스 립톤” (Bruce Liption, Ph.D.) 이 “믿음의 생물학”(The Biology of Belief)이나, “배리 씨어스”(Barry Sears, Ph,D.)의 “늙지 않는 영역”(The Anti-Aging Zone)에서 언급하는 대로 우리 몸은 6만억개(60 trillion)의 세포로 구성돼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 가에 따라 우리 몸의 홀몬이나 신경이 우리의 건강을 좋게도 또 나쁘게 영향을 준다는, 그들의 “콴탐”이론에 입각한 '물과 포도주의 설명'을 나는 100%로 받아드린다. <참고 4>

나도 나의 정신 밎 신체의 안위를 외부상황에 관계없이 이런 내면의 세계에서 행복과 축복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힘쓰는 것이다. 거듭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늘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또 기도하는" 일상 생활의 정신 세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요즘 콤퓨타를 이용하다 보면 그 오묘하고 신기한 기계에 끝없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이용하는 분야는 얼마나 하잘것 없는 것인 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빵 다섯 조각과 생선 두마리가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정신 세계를 상상할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 나라의 비밀”도 이와 같은 신비로 그 말씀안에 담겨져 있으리라고 짐작하게 된다.

<참고 1> Morton Smith, Ph.D. “Jesus The Magician”에서는 예수님이 에집트에서 마술을 배워왔다고 했다. 우리의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한 2세기에는 이러한 사상들로 세상을 이해하는 많은 종교 지도자 (사도 바울, 마태, 마가, 누가 같은 Evangelists)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마술이라든가 기적의 사건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Nag Hammadi”의 고문서에서 발견된 “토마스경”인 The Book of Thomas에서는 예수님의 말씀만 기록되어 있다. 즉 그의 출생이나 기적의 사실이 전혀 없다 한다.

<참고 2> 1945년 에집트의 “Nag Hammadi”에서 발견된 “그노시즘” 의 고문서와 동 시대에 유대교 “Essenes파”의 쿰란 “스크롤”에서 알 수 있음. 이 “그노시즘”과 이란(페르샤)의 “Mithra 神”의 신비적 세계에서는 기적을 인정하고 마술을 행했다고 한다.

<참고 3> 우연의 일치로, “칼 발트”도 지난주 내가 설명했던 논리와 일치하는 견해임을 이번에 “Encyclomaedia Britanica”에서 발견했음.

<참고4> Encyclopaedia Britannica, Jesus the Magician, Biology of Belief, Anti-aging Zone, Taking the Quantum Leap (Fred Alan Wolf. Ph.D.), When Jesus Became God (Richard Rubenstein; Prof. of Social Violence and Religious Conflict, at George Mason University)


禪涅槃
2018년 7월 21일

2018-07-24 08:03:17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주간운세
시민권 취득 예상문제
운전면허 예상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