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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부) 시온니즘과 반유대주의
작성자 bibliatell

성서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을 때 이미 그곳엔 과거 2000년 동안 퍼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노아의 홍수 이후로도 400년 이상 지난 시점으로 다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가난안 정복과 분배로부터 1차적 이고 원시적 반유대주의는 싹텄거나 시작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인한 원한의 역사는 지금도 중동문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고 늘 불씨만 당기면 터질 수 있는 종교적, 인종적 그리고 지역적 화약고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 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선 가나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원주민들을 죽이셨는가? 여러 가지 명쾌한 답변들이 있지만 후일 적당한 기회에 이 문제는 다시 언급하려 한다.

이스라엘의 두 왕국이 모두 망하고 대부분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벨론 제국이 발흥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패망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초대 왕인 고래스(Cyrus) 왕의 배려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귀환하기 시작한다. 2대 왕인 다리오왕, 3대 왕인 아닥사스다 왕에 걸쳐 3차에 걸쳐 귀환한 이들은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다(BC 454 년). 그리고 구약은 말라기서를 끝으로(BC 441 년) 더 이상 성경 기록이 없고 우리들이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400년 침묵의 역사로 들어간다.

페르시아 왕들의 도움으로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는 동안 주위 이웃 나라들의 불만과 방해공작이 심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도 잠재해 왔던 반유대주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바벨론 포로기간(BC 606-536)중에 회당이 생긴다. 성전에서 제사행위로 예배를 드렸던 이들은 포로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모여 율법을 강론하고 시편을 낭독하며 자기들의 정체성을 읽지 않고 지키기 위한 회당을 지은 것이다. 바벨론(오늘날의 이락 지역), 앗시리아, 시리아, 베니게,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지역), 그리스, 이집트, 북아프리카,로마등에 흩어져 살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회당을 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한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때로부터 2000년이 훨씬 지난 먼 훗날 이들 유대인들은 3개 지역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유럽을 중심으로한 600만명의 백인계 유대인들이 나치 히틀러에 의해 살해되며 그 바탕에는 오래된 원시적 반유대주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BC3세기경에 생긴 무리들이다. 이들은 헬라화를 원치 않았고 전통과 율법을 중시했다. 세월이 흐르며 이들은 독선적이고 위선적이며 형식적인 사람들로 바뀌여 갔다.

페르시아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부분에서 독립을 유지했으나 BC331 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킨다. 알렉산더가 BC 323년 죽자 그의 장군들이 영토를 분할하게 되는데 이 때 프톨레미 소테르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며 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이집트로 보낸다. 이집트로 내려간 유대인들은 정통 유대교와 헬레니즘을 접목시켜 타협적인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만든다.

시간이 흐르며 이집트를 점령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 지역을 점령한 셀레우코스 왕조에서는 여러 왕이 집권했으며 이 둘 사이에 낀 팔레스타인에는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고 어느 쪽이 이기든 유대인들은 피해를 보았다. 유대 헤브라이즘과 그리스 헬레니즘을 추구하며 이들은 이중적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유대 지방에는 전통적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바리새인들과 그리스 문화는 물론 다른 민족의 문화를 흡수해야 살 수있다고 믿는 사두개인등 두 그룹이 지도권을 놓고 충돌했다.

이 때에 (BC 171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대왕은 예루살렘을 습격하여 사흘만에 4만명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며 유대인들의 성소에 들어가 우상 제단을 만들고 멸망의 가증한 것들을 세운다. 이에 반항한 유대인 무리들이 일어났는데 (BC 168년) 이들이 바로 마카비 형제들로서 마카비 반란이라 부른다. 이들은 성전을 탈환하고 성전 예배를 복원하나 당시 서방세계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떠오른 로마와 동맹을 맺으며 완벽한 독립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잠시 독립된 나라가 된다.

그리고 BC 135년에 마카비 형제들이 죽고 BC 134년에서부터 30년 동안 통치한 마카비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는 로마와 동맹을 갱신하였으나 어두운 시대가 계속되다가 BC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고 BC 40년 로마가 헤롯을 대왕으로 임명하며 BC 37년부터 BC 4년까지 통치하게 한다. 헤롯은 마카비 계열 사람들중에서 다음 왕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계열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BC 4년 어느날 400년 간의 침묵의 역사를 깨고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여자의 씨로 이 땅에 태어난다. 헤롯은 자기를 해치려는 음모를 무서워하여 자기 아들들마져 살해하고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란 동방의 지혜자들의 말을 들은 뒤에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린다. BC 4년에 헤롯이 죽고 그리스도와 침례자 요한이 태어나고 드디어 AD 1년 기독교 기원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로마의 식민지였다.

2부 끝

2017-03-02 16:40:08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5   bibliatell [ 2017-03-03 09:40:24 ] 

시온니즘과 반유대주의를 신약 이후 유럽의 백인계 유대인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보통은 말하는데 저는 성경을 계속 읽으며 그 뿌리가 더 오랜 세월 속에 있는 것 아닌가 보며 1부와 1부를 적었습니다. 3부와 4부에선 본격적으로 신약 이후의 시온니즘과 반유대주의의 역사가 나오긴 합니다만. ㅎㅎ

4   bibliatell [ 2017-03-03 09:35:09 ] 

나선생님의 오타 지적 감사. 열심히 오타를 골라내는데도 역시. ㅎㅎ

3   bibliatell [ 2017-03-03 09:34:01 ] 

젠선생님의 지적이나 요구사항은 신학에 가까운 것이라 열당에 맞지않는 것 같아 종교마당에서 논함이 어떨지요? ㅎㅎ

2   naesjic [ 2017-03-02 20:18:52 ] 

다음편에 어떤글이 올라올지 미리 후추를 뿌리는 것은 좀...
예의가 아닌것 같고
어떤 글이 올라올지 알수도 없거니와...
다음편도 기대가 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바벨론 포로기간(BC 606-536)중에 회당이 생긴다. 성전에서 제사행위로 예배를 드렸던 이들은 포로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모여 율법을 강론하고 시편을 낭독하며 자기들의 정체성을 읽지 않고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앞뒤 문맥을 보아도 읽다 는 조금 이상해 보이고...

저야 워낙 천방지축이라 오타투성이지만
오타를 찾는 일도 저의 일중의 하나라... 죄송.

1   zenilvana [ 2017-03-02 19:04:28 ] 

인류역사에서 한 부류가 타를 정복했던 것은 다반사였다. 유독 유태인들에 국한하여 Anti-Semitism으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말 자체는 기독교가 득세하고 난 후에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태인이 예수를 죽였던 사실과 그를 단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한 것에도 그 이유가 있다.

남어지 역사적 서술은 이미 알려진 것들로써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전파하려던 복음이 가지는 의미와 그 사상적 유래는 당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해주시길 바라고, 예수의 사후로 생겨난 희랍철학에 근거한 사도바울적 신학에도 버금가는 상세한 탐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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