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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나스 멍충이가 뭐 좀 배우면 죽냐?
작성자 zenilvana

母胎信仰(모태신앙)이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 교회를 다니던 어머니의 뱃속에서 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나도 實(실)은 모태신앙의 출신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때 교회당을 다니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당시에 세례교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5-6살로 성장하던 과정에서 어머니가 교회다니기를 중지하고 무당을 찾아 다니면서 집에서 굿도 하고, 꺼덕하면 점받치나 사주쟁이에게 일년신수나 화복길흉의 답답함을 묻고 계셨다.

내 집사람은 그 10여년 전에 이미 받았지만, 나는 세례받기를 거부해 오다가, 모임에서 가장 아는 척을 잘하는 불신자(不信者)라는 생각이 들었다. 챙피한 생각이 가끔 들었기는 했지만 마지 못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도 여러해가 지났다. 집사를 하라는 성화에 못이겨 안수를 받았고, 3년 임기를 마치고는 더 이상 하기를 거부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도 사람들이 나를 집사라고 불러주나, 나로선 별로 대견한 호칭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함부로 남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전통이 있는지라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특기할 것은 2008년 이래로 나는 교회엘 거의 나가지 않고 있다. 아실분은 알겠고...,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장님이 장님들을 인도하는 데에 아주 질려버렸다.

신앙을 가지는 데에도 꽤 이런 엎치락 뒷치락의 긴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어린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 가듯이 정신연령도 마치 이와같아서 계속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이란 정체된 믿음이 아니다. 거듭 발전해 나가야 참다운 신앙의 경지에 이른다. 어린 아이가 배밀이를 하다가 드디어 걷고 더 자라서 뛰어다녀야 언젠가 사람구실을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 불이 붙지 않는 떨기나무 숲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구약의 출애급기에서 말하고 있다. 에집트에서 노예로 학대 받는 자기 동족을 구해 내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세가 아뢰기를, 자기는 말이 굼떠서 이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다는 핑계를 댔었다. 물러서지 않는 하나님에게 모세가 물었다. 나를 보낸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무었이라고 대답하리이까?

영어로,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Exodus 3장 14절) 다른 구약성경에서는 "I AM who is becoming"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動詞(Verb)이다. "God is a Verb란 제목의 책을 David Cooper란 사람이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유태교에 Kabbalah라는 신비적 영감을 추구하는 종파가 있는데, 제2차 대전 중에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이 학살되면서 거의 사라질뻔 했었다. 최근에 다시 그 흔적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 분이 그런 復古(복고)활동으로 위의 책을 집필했었다.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란 움직일 動(동)의, 말씀 詞(사)로써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럴듯 한 것이, 누구 하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가 보니 일정한 어떤 존재라고 일괄해서 말할 수가 없다. 다들 자기대로 짐작할 뿐이다. 그것도 각 개인의 지식수준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임으로 우리의 사물판단이 향상됨에 따라서 발마추어 같이 인식하게 된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였다고 믿었던 어린 아이가 커서는 사실의 어떤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과 같다.

오늘날 서양문화가 전 세계에 퍼져서 기독교나 유태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알고 우리가 교회나 성당을 다닌다. 600년 전에 허균이 중국에서 이런 이방인 하나님의 개념을 처음 이 땅에 들여왔을때, 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北望山(북망산)에 가 계신 조상의 귀신 정도로 알았지 않았을까 한다.

하나님은 그날 이후로 "진행형의 존재"로서 우리들에게 인식되어 왔다는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진행되는 것들의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되어 가는 세상을 우리는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가면서 늘 공부하고 배워서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내게 시사하는 좋은 경구가 눈에 띄길래 여기에 소개한다.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 6 가지의 실수들을 '씨세로'란 로마의 고명한 분이 이렇게 집약했다고 한다.

1. The illusion that personal gain is made up of crushing others (남을 패배시켜서 개인적으로 재미를 볼수 있다는 착각: 이것이 시기, 질투, 비방, 모함, etc.)
2. The tendency to worry about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or corrected (변화나 바로 잡을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늘 걱정하고 사는 것:미국경제, 남북통일, 교회의 분란, 속물의 목사 및 그의 설교 등등)
3. Insisting that a thing is impossible because we cannot accomplish it. (될일이 아니라고 지레 짐작하고 불가능하다고 한사코 우기는 짓: 모르는 것, 새로운 것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4. Refusing to set aside trivial preferences (사소한 '좋고 나쁘고'에 매달려 뿌리치지 못하는 행위: 무슨 음식, 자동차, 유행물들...)
5. Neglecting development and refinement of the mind, and not acquiring the habit of reading and study (지적능력의 개발과 그 정진을 게을리 하고 책을 읽고 연구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는 것)
6. Attempting to compel others to believe and live as we do (남를 강요해서 자기 식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 야수교 비난하는 짓, 남의 글 비꼬고 욕하는 수작... )

-Marcus Tullius Cicero (106 B.C.-43 B.C.)- 위의 인용은 Wayne W. Dyer란 정신수양과 인격향상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으로 "Wisdom of the Ages"-60 days of Enlightment란 그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이 사람 말 중에서 "지적능력의 개발과 정진을 게을리 하며 책을 읽지 않는 습관"에 대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Cicero의 말을 지금 인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성장하지 않으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그 하나의 진리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북쪽지방에 가면 Redwood란 나무가 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집채 만큼 큰 밑둥지를 하고 살아 있어서 하늘 끝으로 자라 올라가고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냐?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내륙의 Cascade Range 산벽에 부딪쳐서 비가 자주 내려주는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비라는 책을 이 나무가 늘 읽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우에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그림 속의 것과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체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5 관에 의한 체험으로 가공의 것과 실체를 인식하면서 지각이 발달한다. 학교교육이란 것도 이와같아서 내가 체험한 것을 넘어서서 남이 이루어 놓은 사실의 축적으로 정신적 연령이 성장한다.

그리고 특수분야에 정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여 공동체의 한 역활로 살아 나간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전문지식으로써 만족하면서 다른 知的 世界(지적세계)를 더 이상 섭렵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안주하며 정신적 개발을 멈추고 만다.

이런 과정으로 나이가 들어가면, 사물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점차로 줄어들고 생각의 범위가 좁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옛날 것에만 고착되어, 생각없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습관이 자라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생각이 기존의 경험에 굳어진다는 거다. 비가 자주 내려서 나무의 부름켜가 비대해져야 함에도, 비가 내리지도 않을 뿐아니라 비를 피해다니며 살기를 좋아한다. 결국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늙기 시작하다가 고목으로 죽고 만다.

어린 것은 유연성이 있으나 늙은 물질은 굳어져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로 고집으로 뭉쳐서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한다. 결국 사고와 육체가 뻣뻣한 고체로 화해서 70년의 생애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겠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두뇌세포가 가속도로 죽어가고, 팔-다리가 가늘어 지고, 심장의 박동력이 약해지고, 체온이 점점 차겁게 위로 올라오게 된다. 모든 신체기능이 이처럼 퇴화하면 결국 면역기관도 외부병균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노화현상이라 부른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되는가? 누가 중년에 못다한 것을 노래했다 마는 무엇을 알려고 하는 흥미와 지적인 추구가 시들해 지면 중년에서 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육체는 정신에 따른다. 정신을 활성화 해야 몸이 건강해 진다는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다.

禪涅槃

2017-03-27 14:11:31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5   zenilvana [ 2017-03-27 15:49:31 ] 

#4 까꾸로든 제대로든 교회에서 통용되는 어휘란 말이요. 그런 말 쓰면 않됩니까? 남들이 다 쓰는데 b슨상 한 사람만 아니 쓴다는 이야기 같은데, 내가 다시 묻습니다.

언제부터 그처럼 성경 내지 교횟일에 정통한 량 처신하는 겁니까? 이런 말은 아시겠지. 의로운 자는 단 한명도 없다는...... 보아하니 b슨상이야 말로 義로운 사람이로고.

4   bibliatell [ 2017-03-27 15:39:10 ] 

거꾸로 이해하셨군요. 그러니까 모태신앙이라는게 말도 않되는 웃기는 얘기라는 거지요.ㅎㅎ

3   zenilvana [ 2017-03-27 15:33:17 ] 

#2 "모태에서 부터 믿고 받드는 자라" 정의하시는데
어디서 그런 요상한 아이디어를 습득하셨오이까?

태안에서 이미 하나님을 받들어 모셨다......
아직 핏덩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가 있다고

나야 도중하차를 했으니 그 정도로 하고 말았지만.
b슨상은 언제부터 신-구약을 다 도통한 겁니까?
설마 모태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는 건 아니겠지요?

2   bibliatell [ 2017-03-27 15:15:43 ] 

모태신앙의 뜻을 풀이하면 어머니 태에서부터 믿고 받드는 자였다는 말인데 너무 웃기는 얘기 아니예요? 출처가 한국사람들로부터 나온게 여러 가지 있는데, 말하자면, KOREAN PRAYER(통성기도), 새벽기도, 모태신앙, 등등.

1   shanghaip [ 2017-03-27 14:46:50 ] 

母胎信仰(모태신앙) 출신치고...반기독교인이 않된 교인들이 드믈든듸...
renas는 옛날 뽑자의 후신 아닝가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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