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육신이 육신이 되는 삶의 연속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차마 참회의 거울 앞에도 설 수 없는 부끄러운 삶의 연속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회마저 않고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는다면
인간 말종이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에 오늘도 참회의 거울을 듭니다.
그런 연유로 기독인으로의 절대 의무 사항인 전도 전 이것을 드러내놓고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전도서 5장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헛된 꿈을 꾸는가 ?
얼마나 많은 독한 말을 하며 살아 왔는가?
여기 인생 선배인 어르신들이 그리 살지 말라고 꾸짖고 계십니다.
어르신들이 그러하다면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여기 어느 어르신은 주옥같은 인생관을 말씀하시며 단 몇 가지는
안하신다고 하십니다.
먼저 기타 저도 학창시절에만 조금.
골프 워낙이 노는 것 좋아해 시작도 안했습니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일도 팽개치고....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요
주변인들이 다 골프 합니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한 10셑 정도 나에게 안긴 걸 다시 남에게...
그러나 골프인들 운동으로 취미로서 친목으로 좋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교회에 안 나가신다고 합니다.
먼저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가 기독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러왔는가 ?
도대체 언제쯤이나 똥통 속에서 나올 수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 지은 자에 돌 드는 것은 고사하고 돌 맞을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본인은 사실 가족모임에서 조차 정치 종교 이야기 거의 안합니다.
하더라도 추임새정도 ?
왜냐하면 자칫하면 잘난 척이 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니 말입니다.
게다가 성정이 과격하여 정돈된 말이 아닌 입에서 똥이 먼저 나갑니다.
무엇을 위한 토론입니까?
듣기만합니다.
고희라 하셨는데 저보다 십여년 윗 연배이십니다.
살아오신 날보다는 ... 그래서요
건방지지만 휴 저도 내세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더 막 살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교인을 목사님을 절대로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와 하나도 다름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나와 예수님의 관계 저는 그것만 생각합니다.
내가 가리고 감추면 인간들은 속일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살라고 항상 꾸짖는 이 나의 목자에게 부끄럽고 두렵고 의지합니다.
자식이 부모님에 갖는 심경?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