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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명의 시작과 이동
작성자 bibliatell

문명의 시작과 이동(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에서 간추림)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중심으로 오리앤트 문명이 시작되고 오리앤트 문명은 크레테(구레네)섬으로 옮겨간다. 크레테 섬에서 꽃피운 문명은 이오니아(소아시아)로 옮겨가며 그리스 반도 아테네로 옮겨 붙는다.

이오니아반도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과 그리스 반도의 아테네는 폴리스라고 하는 도시국가를 통해 민주주의를 꽃피웠고 그리고 군국정치를 지향한 그리스반도 남단의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와 아테네와의 전쟁과 전쟁들을 거쳐 문명을 꽃피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엄한 율법을 가진 유대민족으로 유일신 사상을, 그리스는 다신교 사상을 발전시켜 경전이 없이 그리스 신화를 통한 신들을 인간세계와 뒤섞여 살아가는 존재로 부각시킨다. 동일한 시대에 동양에선 공자(기원전6세기) 맹자(기원전4세기) 장자(기원전4세기)의 동양철학사상이 생겨난다.

이오니아의 밀레투스(밀레도)는 나중에 밀레투스 학파라 불린 최초의 서양철학 학파가 생긴 곳으로 이곳에서 철학이 시작된다. 최초의 서양 철학자는 탈레스(BC 625-BC547),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 (BC 610-BC 546), 아낙시메네스 (BC 585 – BC 528), 이들은 모두 밀레도 태생의 철학자다.

1) 탈레스 : 모든 사물의 근원이 물에 있다
2) 아낙시만드로스 : 원질은 경험에 있지 않고 무한한 비경험적인 것에 있다
3) 아낙시메네스 : 원질은 경험적인 것에 있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규정하는 말이 달라질 뿐이고 지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둘러싼 담론이다.

이들 모두 자연에서 원질을 찾았기에 자연철학을 정립한 것으로 분류된다.

피타고라스(BC 580- BC 500)는 밀레도 앞 사모스 섬 출신으로 밀레투스 학파와는 다른 학파를 세운다. 철학을 종교적 관심에서 시작했다. 그는 원질을 수에서 찾았다. 모든 만물이 수에 기초한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래서 수학과 천문학에 몰두한다.

이 밖에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모두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가 아닌 이오니아, 이탈리아, 트라키아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리스 본토에서 발생한 최초의 철학자는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에선 논리와 수사에 능한 자가 출세할 수 있었다. 필라소피란 말 자체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동양에서 공자도 자신의 정치사상을 받아줄 나라를 찾아 천하를 주유했듯이 소피스트(궤변가)들도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을 돌아다녔다. 이런 자들이 아테네로 모여들었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프로타고라스)라고 함으로 절대적 기준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고 지식을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함으로 철학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이 때 나타난 사람이 소트라테스로 아테네 출신이었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피스트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그는 절대적인 지식의 추구를 철학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자연이 아닌 인간에 관한 지식이었다. 상대적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대화를 통해 진리를 깨닫게하는 방법으로 철학적 방법에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을 남겼다. 그의 진정한 제자는 플라톤(기원전 428-기원전 348)이었다.

플라톤은 이오니아 철학의 자연과 그 근원에 대한 관심,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합치려 했다. 이것이 그의 이데아론이다. 원질은 영원불변하고 세상만물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진정한 실체는 이데아이다. 이 이데아는 직접 볼 수 없는 것으로서 사물을 통해 인식한다. 이 이데아는 사물을 존재케 하는 실체다. 사물은 이데아를 인식케하는 창문으로 이데아와 사물, 본질과 현상이라는 변증법적 관계는 이후 수천년 동안 서양사상을 관통해온 이원론의 토대가 된다.

플라톤은 BC 387년 아테네 최초의 대학(아카데미)을 세운다. 이 아카데미 출신인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BC 384- BC 322)다. 플라톤의 추상적 이데아론과는 달리 형상이라는 현실적이며 구체적 사상을 전개했다. 형상과 질료의 관계를 논한다. 말하자면 아폴론이라는 형상과 대리석이라는 질료가 합쳐져 아폴론 석상을 이루는 식이다. 스승과는 다르게 일원론을 전개했다. 스승과는 다르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서양철학의 양대 축을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뿐 아니라 정치학, 논리학, 생물학, 천문학, 심리학, 윤리학, 기술과학등 모든 학문에 그와 관계없는 것이 없다. 한 때 그리스 북부 신흥강국 마게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를 가르쳤던 아리스토테레스는 그의 지원으로 아테네에서 학원도 열었지만 그의 조국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는 마케도니아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다.

여기서부터는 본인의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간추린 역사와 철학이라는 사상(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에서 간추림) 앞에서 다시 한 번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과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한다. 추구와 믿음의 대상을 자연에서 찾다가 인간으로 돌아가고 인간에서 찾다가 다시 지식으로 돌아가 찾는 사이 이들은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자 만물의 근원인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훗날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중동 지역(팔레스틴)과, 키프로스(구부로) 섬과, 소아시아(이오니아)와,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반도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걸친 3번의 선교여행과, 죄인의 신분으로 크레테 섬(구레네)과 시실리아 섬을 거쳐 이태리 반도의 로마로 이송되기까지 그가 교회들을 세우며 외쳤던 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 모든 것을 철학이라는 용어로 정리한다면 그의 외침은 우리의 철학 대상이 자연이나 인간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외친 것이다.

일반 서양사와 서양사상의 축을 이룬 서양철학의 전개과정을 가까이 접할수록 13권의 서신서 속에서 사도 바울이 공통적으로 힘주어 강조하여 견제하고 방어하고 경고한 철학사상(자연/인간/지식)과 우상과 이단사상이 더욱 뚜렸하게 닥아온다.

에피큐로스 철학파와 스토아 철학파의 철학자들이 우굴대는 아테네를 방문한 바울은 온 도시가 온통 우상숭배(약3만 가지의 신들을 섬겼다 함)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영이 격동하여 그들 앞에서 예수와 부활을 선포한다. 이에 그들은 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데리고 가 무슨 얘기인지 더 자세히 알고자 한다.

이에 바울이 다음과 같이 다시 선포한다 (사도행전 17장22-31절),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내가 지나다니며 너희가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글이 있는 제단을 발견하였나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여 주리라.

세상과 그 안에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라.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에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혹시라도 주를 더듬어 찾다가 발견하면 그분을 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그분은 우리 각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너희의 시인들 중의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 하였나니 그런즉 우리가 하나님의 후손일진대 하나님의 신격을 결코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새긴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로마서1장에선(18-23절)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가 추구하고 믿고 따르고 실천해야 할 철학의 대상이나 진리는 자연이나, 인간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곧 진리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는 자연만물을 통해 이미 드러나 있기에 누구도 핑계하거나 변명치 못할 것이라는 것도 선포한다.

2017-11-04 20:51:22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rainbows79 [ 2017-11-04 21:56:32 ] 

책읽기 좋은c 시절, 감과 사과가 익어 가는 때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소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탄압과 망명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두 가지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 소설은 그 무엇도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가벼움과 니체의 철학에 등장하는 영원회귀(永遠回歸)의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이다.때는 매우 위태로운 해였던 1968년의 프라하. 토마스는 가벼움을 끌어안는 외과의사이다.
그는 일부러 모든 무거움을 떨쳐버리고 어떤 사상의 딱지도 멀리한다.
사비나는 토마스처럼 구속받지 않는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예술가로, 가벼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테레자는 무거움이다.
전원 생활에서 도망친 그녀는 토마스의 낭만적 이상을 믿는다.
그녀의 사랑은 구속의 끈이다—물론 나쁘지는 않다, 다만 무거울 뿐이다.
또 토마스와는 달리 그녀는 열렬한 정치적 신념의 소유자다.
이 세 사람의 인생이 부딪히면서 가벼움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던져진다.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이란 무엇인가?소련군의 탱크가 프라하의 봄을 쳐부수러 밀려들어오자, 토마스와 테레자는 스위스로 탈출한다. 그러나 테레자가 프라하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자, 토마스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남을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그는 공산주의자들이나 반란군의 볼모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무거움을 받아들이고 테레자를 따라 억압의 세계로 돌아간다.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을 오직 한 번만 할 수 있고, 그 선택은 단 하나의 결과를 불러오며, 다른 하나를 택했을 때의 결과를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이 사실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가장 우선됨을 주장하고 있다.
개개인에 대한 긴박하고도 필수적인, 달콤쌉싸름한 찬양이다.“영원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우리의 삶은 모든 즐거운 가벼움 속에서 그것에 맞설 수 있어. 그렇지만 진정 무거움은 비참하고, 가벼움은 즐거운 것일까?”


그리스인 조르바
20세기판 산초 판자와 팔슈타프를 하나의 인물로 응축시켜 놓은 알렉시스 조르바는 현대 문학이 창조해낸 가장 원기왕성한 “보통 사람” 중 하나이다.
피레우스 항의 한 카페에서 화자(아마도 젊은 지식인 시절의 작가 자신)는 “살아있는 심장, 거대한 게걸스러운 입, 아직 어머니 대지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위대한 야수의 영혼”인 조르바를 만나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삶에 대한 조르바의 정열(그리고 과거에 광산 노동자 십장이었다는 그의 고백)에 대한 화답으로 갈탄 광산 노동자들의 감독을 맡아달라는 초청이 도착한다.
반짝이는 펠로폰네소스 섬을 무대로 우정과 피카레스크적인 모험들을 거쳐 조르바는 위험과 좋은 감정을 공평하게 유발하고, 화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자신의 학문적, 정통적인 접근에 의문을 품게 한다.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조르바의 놀라운 자연스러움과 젊은 화자가 적용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절제된 “고대 그리스”식 사고방식 사이의 철학적 논쟁이다.
거기에 따뜻하고 쾌적한 에게 해의 빛, 공기, 색깔, 냄새까지 더해져 문학의 최고급 야외 성찬이 펼쳐진다.
1957년 한 표 차로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놓친 카잔차키스는 여행안내서부터 번역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 목록의 소유자이다.

일본 교토에서 불교 신자인 아버지와 상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부모에게서 배운 일본 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미국 문학 속에 나타나는 동서양의 갈등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 둘의 화해를 끊임없이 주도한다.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는 정신분석학적인 마술적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열다섯 살 난 소년 타무라 카프카의 아버지는 어느 날 카프카에게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자게 될 거라는 오이디푸스적인 예언을 한다.
카프카는 이 예언에서 도망치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달아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어렸을 때에 누나를 데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나선다.
이와 병렬 구조를 이루는 두 번째 이야기는 카프카의 세계를 떠돌고 있는 나카타의 이야기이다. 카프카와 나카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하지만, 삶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여행은 풀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엮여 있다.이 소설은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겹쳐진 시간들, 유령과 음악, 용서의 치유력, 폭력, 사랑, 기억 그리고 상실감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개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조니 워커나 커널 샌더스처럼 실물보다 큰 캐릭터들은 모든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섬세하게 조율된 문장과 주의 깊은 디테일 묘사를 통해 무라카미는 초현실적인 혼돈의 우주적 음률을 선불교의 명상과 함께 화음으로 이끌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는 시간과 삶, 죽음의 비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탐험하고, 또 동양과 서양의 방식을 결합함으로써 현대 세계와의 타협을 도모한 글쓰기이다.

야생초편지
줄거리 1955년 서울생.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화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정치학을 공부하던중,학원 간첩단 사전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001년 6월 8일 *** 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을 이 세상에 널리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그가 서른이던 1985년부터 1998년 마흔네 살이 될때까지 13년 2개월동안의 황금같은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내 인생을 내 의지로 내가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젊은 시절, 무기징역 선고는 날벼락 같은 것이었고 그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살아온 길과 세상의 이치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연히 교도소 벽에 도배된 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 자신 또한 분단된 국가의 희생자 또는 순교자라는 생각에, 열세살 어린 나이에 고문을 견디다 순교한 유대철 성인의 세례명인 베드로를 우리말로 바꾸어 바우라는 이름으로 종교생활을 시작하였다.
60일동안의 모진 고문과 추가징역도 두려워하지않고 난동을 부린 죄로 온몸과 팔마저 묶어 가두는 두 달간의 징벌방 생활로 체험한 두번의 죽음.
당시 하염없이 `주어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였지만, 그는 신으로부터 아무 대답도 들을수 없었다. 교도소에서 할수있는 모든노력이 좌절되자 그는 고정된 인격신을 넘어 모든것에 편재한 하느님을 추구하게되었다. 도가사상은 그런 생각의 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떤 사소한 물건이나 벌레, 풀같은 존재들이 신령스런 존재,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감옥 안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종에 가까운 풀들을 심어 가꾸며 징역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옥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감옥은 더 이상 그에게 투쟁의 장소가 아니라 존재를 실현하는 곳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많은 문제들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지원이 들어오고 외국으로의 서신 왕래가 허락되어 영국 펜클럽 명예회원 자격으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마침내 1998년 오랜 영어 생활에서 풀려나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지을 때, 노르웨이 국영방송이 찾아와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하여 노르웨이 전역에 알려지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1999년부터 2년동안은 유럽에 머물며 영국의 임페리얼 대학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하면서,변화하는 세계의 모습과 유럽의 대안공동체들을 살펴보고돌아왔다.
이즈막 그는 활발한 저술과 강연 와중에 청년시절부터의 오랜 숙원이었던 생태공동체의 실현에 온 열정을 쏟으며 2001년부터 현재까지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고있다. 저서 백척간두에 서서:공동체 시대를 위한 명상 과 세계공동체 탐방기인 공저 세계어디에도 내 집이있다.
역서 가비오따스 와 논문 대체 농업의 상호비교에 대한 연구: 자연농업을 중심으로 가 있다. 현재 지난 2년 동안의 유럽 체험을 바탕으로 인권과 생태문화제의 연관 속에서 정치.사회구조.인간관계를 재조명하는 유럽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백년 동안의 고독
가르시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백년 동안의 고독』은 허구의 콜롬비아 시골 마을 마콘도와 이 마을을 세운 부엔디아 가의 흥망을 그리고 있다.
가족의 이름과 기질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등장인물들은 이중과 반복의 패턴을 보여준다. 대담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자였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점점 미쳐가고, 마콘도는 불면증과 전쟁, 그리고 비와 싸운다.
마콘도를 둘러싼 미스터리들은 사실 그 발원지가 없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현혹적인 색채의 대하소설이면서, 폭넓은 사회적, 정치적 알레고리를 풀어내고 있다.이들 중 어떤 것들은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있을 법하지 않고, 어떤 것들은 그 어떤 전통적 리얼리즘보다도 더 사실적이다.
또한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형인 그 우의적 짜임새는 기괴하고, 환상적이고, 믿을 수 없는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사회정치학적 예는 군대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학살해 그들의 시체를 화물 열차에 실어 바다에 던져버리는 장면일 것이다.
공인된 시각의 연막을 배경으로 학살은 계엄령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악몽이 되어 간다. 실종자의 실제 역사는 그 어떤 허구보다 더 이상한 현실을 지니고, 허구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라고 종용한다.소설은 비공식적 대체 역사이지만, 독창적인 이야기 기법은 그 배경에 관능과 사랑, 친근감, 그리고 다양한 상실을 펼쳐놓는다.
화자가 한 문단 안에서 하디부터 카프카까지 변할 수 있는 『아라비안 나이트』와 『돈키호테』의 재치와 미스터리를 떠올려 보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모방작들은 때때로 너무 영리한 독창성 때문에 피곤해지는 서투른 흉내에 불과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은 고독에 대한 기괴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이다.“희극은 끝났다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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