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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닉슨의 중공방문과 북미정상회담
작성자 bibliatell

닉슨의 중공 방문과 북미정상회담


1971년 7월15일 극비리에 헨리 키신저가 닉슨의 특사 자격으로 중공을 방문한다. 그리고 1972년2월21일 닉슨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여 북경 공항에 도착함으로 미국 대통령으로선 중공을 방문한 첫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을 두고 세계는 데탕트(detente)(긴장완화/관계개선) 외교니 핑퐁외교니 하면서 시끌벅적했다. 쏘련이 펄펄 뛰었고, 베트남은 기절초풍했고, 북한은 주체사상에 전념했고, 남한은 아주 어정쩡한 상태였다고 한다.

주은래와 함께 인민대회장에서 마오타이로 건배하며 환영연설하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당시 다시 한 번 유행했던 말은 국제관계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죽고 못사는 것 같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등돌리고 쌩까는 세상이다.

1972년은 재수 끝에 내가 대학에 입학한 년도지만 닉슨이 중공을 방문하던 말던 관심없던 시절이었다.

주은래의 환영만찬이 끝나자마자 닉슨은 모택동을 방문하여 만났으며 곧 이어 중공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한다.

중국의 경제개방정책은 혹자에 따라 1972년 훨씬 이전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1972년 닉슨의 중공방문 이후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수많은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리르렀고 세계 제2경제대국이라는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형태로는 아직도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공산당이 정부를 이끌고 있지만 전세계인이 메이드인차이나 제품을 아무런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사용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중국인을 만나고 우리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중국을 방문하고 여행한다. 나도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김정은을 만났다. 1972년괴 비슷한 모양이다. 5월 말이나 6월 초엔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한다. 이 회담을 중심으로 남북정상회담이 4월 말에 먼저 열리고, 일본패싱을우려한 아베는 기다리다 지쳐 미국을 제발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고, 조중정상회담은 이미 열렸고, 북일정상회담을 추진 중이고, 한러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고, 중일정상회담이 추진 중이고…..

숨 쉬기 버거울 정도로 급박하고 숨차게 모든 나라들이 움직이고 있다. 결론은 북한의 비핵화 선언괴 이행으로 휴전상태에서 종전상태로 바뀌여 평화협정을 맺고, 북미수교와 북일수교가 이루어지는 것을 꿈꾼다.

이후 전 세계의 전폭적 지원으로 북한이 중국처럼 경제개방정책을 폄으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메이드인 조선(made in North Korea) 제품을 아무런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살 수 있길 희망한다.

민족적 대통일은 그 이후가 되어도 좋다.

2018-04-18 14:55:09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2   bibliatell [ 2018-04-18 15:20:32 ] 

나는 개인적으로 이 번 북미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리길 간절히 희망한다. 닉슨이 북경을 방문한 것처럼.

1   bibliatell [ 2018-04-18 15:18:39 ] 

중일수교는 닉슨의 중공방문 이후 얼마되지 않아 이루어졌지만 미중수교는 7년 뒤인 1979년 1월1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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